ADVERTISEMENT

[김미화의 스타 데이트] '성대모사의 달인' 배칠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배칠수(31), 그의 진짜 목소리가 어떤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배철수 목소리를 배철수보다 더 똑같이(?) 흉내내 예명이 '배칠수'가 됐고, 인터넷을 들썩거리게 한 '엽기 김대중' 시리즈에선 김 전대통령보다 더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들려줬던 사람이 바로 그다. 도대체 성대모사 연기가 아닌 배칠수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방송깨나 탔다는 연예인치고 성대모사 한 둘쯤 못하는 이가 없는 요즘이지만 이처럼 배칠수라는 이름 석자는 이 분야의 1인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내 느낌으론 어느날 펑하고 나타난 신선처럼 그는 연예계에 등장했다. 아내(당시는 여자친구)가 '수퍼보이스탤런트선발대회'에 말도 없이 접수시킨 통에 접수비가 아까워 응시했던 게 시작이었다.

장난삼아 시험을 봤는데 대상을 받게 됐고, 상금만 낼름 먹고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우연찮게 라디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고, 그냥 재미있겠다 싶어 출연했다가 발목이 잡혀 오늘에 이르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방송에 목을 매지 않았던 건 방송하기 이전에도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배칠수는 4년 동안 헬스클럽 관장이었다. 돈도 제법 벌었단다. 헬스클럽으로 웬 돈을 그렇게 벌었느냐고 했더니 "헬스클럽이 얼마나 큰 장사인데요"한다. 그는 회원들이 등록카드를 쓸 때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기록하도록 한 뒤 회원의 생일이면 반드시 비타민을 챙겨주어 재등록을 유도했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1백20평이나 되는 헬스클럽을 먼지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쓸고 닦았다. 그것도 사장인 자기가 직접 했지 절대로 직원에게는 청소를 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직원한테는 시켜봐야 자기 가게가 아니니까 하기 싫은 게 당연하고 좋은 사장 소리도 못 듣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배칠수는 누나들과 형 얘기가 나오면 사뭇 착한 표정이 되곤 한다. 그에게 누나나 형은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배칠수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빚보증을 잘못 선 데다 노름과 술에 빠져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돌아가셨다.

이후 그는 뼈저리게 가난을 맛봐야 했다. 학창 시절 칠수는 누나들, 형과 함께 인천에서 살았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들이랑 집을 뛰쳐나와 차를 타고 충남 태안까지 갔단다. 도시락은 다 까먹고 차비도 떨어져 배가 고파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남의 삼밭에 들어가 6년근만 골라서 뽑아먹었다(그 덕에 지금 몸이 건강하다나).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와 칠수의 형님이 인천에서 봉고를 타고 데리러 왔다. 당연히 죽도록 혼이 났는데 뒤를 돌아보니 한 친구가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아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없어도 형이랑 누나가 있어 외롭지 않은데 저 친구는 부모님이 있어도 찾으러 오지 않으니 참 불쌍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형님과 누나한테 잘해야지 하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배칠수는 자기 가정에도 충실한 가장이다. 언제나 말없이 지켜봐주는 아내와 (엄마를 닮아) 예쁜 딸 솔(2)을 무지하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여기 저기서 방송 잘한다고 칭찬해 주니 더 바랄 나위없이 행복하단다.

얼마 전 나는 TV를 보다가 배칠수의 또 다른 면을 발견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출연한 그는 문제의 배철수 흉내를 한참 내다가 배철수의 노래까지 불렀는데 무척이나 쑥스러워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어 "천하의 칠수도 떨 때가 있느냐"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껏 방송하며 그렇게 떨리고 부끄러운 적은 처음"이라면서 "노래를 흉내내는 건 또 다른 영역인가 보다"고 했다. 줄잡아 1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배칠수. 그가 귀한 목소리를 어서 보험에 들고, 노래뿐 아니라 새로운 영역에 자꾸자꾸 도전하기를 바란다.

◇배칠수는… = 본명 이형민. 체육학과를 졸업한 뒤 헬스클럽을 운영하다 1999년 수퍼보이스탤런트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연예계에 진출했다.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동료 개그맨 김학도와 함께 매일 낮 12시20분 SBS 라디오의 '김학도.배칠수의 와와쇼'에서 온갖 세태를 시원하게 풍자한다. 또 주말엔 MBC 코미디하우스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처음 팬들에게 각인된 건 인터넷방송을 통해 선보였던 '엽기 김대중' 시리즈. 김전대통령이 F15 전투기 도입 문제와 관련해 부시 미 대통령에게 욕설을 해가며 전화를 거는 목소리 연기로 전국을 웃음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