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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발로 찾고 카메라로 쓴 로마제국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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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로마제국을 가다

최정동 지음, 한길사
542쪽, 1만8000원

'로마 제국'을 간 저자의 발길엔 '로마'가 없다. 그는 '제국'을 다녀왔다. 로마, 어디에 있는가.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둘러 본 흔한 기행문이 아니다. 저자는 지도의 지층을 뚫고 아득한 역사의 현장에 다녀왔다. 게르마니아.갈리아, 브리타니아, 히스파니아…. 로마가 정복한 그 제국의 역사 속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저자의 발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가 왜 이탈리아의 로마를 말하지 않으면서 "로마 제국을 다녀왔다"고 말하는지 알게 된다.

"나는 '로마'를 여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면서 대상지를 선정하는 데 일정한 기준을 적용했다. 우선 역사의 흐름을 바꾼 현장에 가보는 것이다. 그런 곳은 대체로 유명한 전투의 현장이다. 접근하기도 힘들고 현장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운 곳들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시기적인 문제인데,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카이사르가 활동한 기원전 1세기 중반부터 오현제의 치세가 끝나는 서기 2세기 후반까지로 제한했다. 나는 로마가 아직 로마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 제국을 이룬 시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이 시기는 사람과 신의 관계에서도 인류 역사상 특이한 때였다. 즉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예수는 아직 인간들에게 오지 않은 때'였다. 신에게 주눅 들지 않은 인간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활동하던 그 시기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저자가 '로마 제국'을 맞이하게 된 것은 1996년 시오노 나나미와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 해 초가을, 로마 도심의 포로 로마노에서 만난 그녀는 '자신의 연인' 카이사르의 죽음을 기록해야 했던 허탈감에 젖어 있었다. 그날의 만남을 통해 '로마 학교'의 학생이 된 저자는 이후 10년 동안 참고 서적을 통해 로마 제국의 역사 속으로 빠져 들었고, 최근 몇년 간에 걸쳐 세 차례의 답사 끝에 이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독일.프랑스.영국.스페인, 그리고 그리스를 답사한 저자의 기록이다. 유럽의 주요한 여행지인 이들 국가를 다녀 온 독자는 많겠지만, 그 곳에서 '로마 제국'을 발굴한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신문사 현역 사진기자인 지은이의 시선(그가 직접 찍은 사진이 시선을 풍요롭게 한다)과 역사 지식과 현장 증언을 통해 현대의 지도를 통해서는 닿아보지 못한 '제국의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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