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구원」강조로 이단시비/「오대양」배후의혹 복음침례회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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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신도 18만”… 목사 50명 전국순회/「화폐무용론」내세우는 교리 아리송
오대양사건의 배후종교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정체는 무엇인가.
박순자 여인을 비롯한 오대양직원 32명의 변사사건과 행방을 감춘 송재화 여인의 미스터리에 가득찬 과거행적을 둘러싸고 이들이 한때 신도로 소속했다는 「구원파」종교집단에 대한 궁금증과 의혹이 점차 커가고 있다.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책임있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교단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61년 국내 개신교 각 교파의 청·장년 목사와 신도 1백여명이 소속교단을 뛰쳐나와 조직한 초교파 평신도모임이 모태가 됐다고 한다. 이들을 이끌던 대표적 인사가 장로교목사 출신의 권신찬씨(70·현 서울교회 목사)와 그의 맏사위였던 유병언씨(50·현 주식회사세모 사장). 처음엔 교회조직이나 목사를 두지 않은채 평신도들만으로 전교활동을 폈으나 전국에 걸쳐 차차 자체교도수가 불어나면서 81년 11월 문공부에 정식으로 교단등록을 했다.
이때 교단등록문제를 놓고 등록에 찬성하는 권목사와 순수한 평신도운동을 주장하며 등록을 반대한 유씨간에 격렬한 대립이 발생,유씨는 신앙방법상의 차이를 이유로 끝내 교단을 떠나 버렸다. 당시 유씨는 교단을 떠나기에 앞서 행한 고별설교에서 『나는 교회가 아닌 기업을 통해 선교한다. 직원들도 불교·유교 등 타종교 신도들을 채용해 모두 구원파 신앙인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용산 서울교회의 한 교도는 유씨가 고별설교를 하고 교회를 떠난 뒤로는 두번다시 모습을 나타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최근 수사결과 유씨는 그후에도 계속 신도들을 통해 사채를 끌어들이고 그 때문에 83년에는 구원파내부에서 심각한 문쟁까지 일어났던 것으로 드러나 유씨와 교단의 결별설에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한편 교단등록전인 66년부터 권목사는 극동방송의 방송목사로 스카우트돼 이후 10년동안 『은혜의 아침』이란 30분짜리 성경강해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해마다 따로 청취자 수양회를 개최하는등 구원파신도들을 모아들이는데 진력했다. 이 청취자 수양회는 인기가 매우 높아 70년대초에는 1주일 일정으로 열리는 모임에 매회 1천5백명 이상씩이 모여드는등 일대성황을 이뤘다.
81년 문공부에 공식 등록할때 기독교복음침례회측이 자체집계해 밝힌 교도수는 10만명. 10년이 지난 지금은 국내외 2백10개의 교회와 18만명의 신도를 지닌 큰 종교집단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 선교에도 힘을 기울여 현재 미국·영국·캐나다·서독·브라질 등에 약 40개의 개교회와 3만명 이상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파는 목사 양성기관을 따로 두지않고 과거 다른 교파에서 목사를 했거나 성경공부와 신행이 독실해 탁월하게 영적 구원능력을 지니게 됐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신도들이 추천,목사안수를 베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체목사수는 50명 정도로 이들은 대개 담임교회없이 전국을 돌며 순회설교를 한다.
교리의 특징은 성경을 지극히 교조적으로 해석하면서 교단명칭 그대로 침례의식을 강조한다는 것. 교리상 다른 개신교파와 크게 다른 점은 발견되지 않으나 다만 구원에 의한 거듭남(born again)의 체험을 지나치게 중시하기 때문메 다른 교파들로부터 이단시비와 함께 「구원파」란 별명도 얻었다.
또 일부 신자였다는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차입해와도 하느님 뜻대로 살면 빚독촉을 받지 않는다』『말세가 되면 지폐는 휴지조각이 되고 크레디트카드시대가 온다며 화폐무용론을 내세웠다』는 등의 탄원을 하는등 교리에 따른 재산헌납에 대한 의혹도 받고 있다.
구원파 신도들중에는 대학교수·법조인·언론인·군장성·연예인 등 사회 저명인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교단측에서는 개인인격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이들의 신분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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