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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달인' 변호사·회계사도 공직 입성하기 험난하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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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A4 석 장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하시오'.

최근 재정경제부 5급 사무관 선발 시험에 응시한 180명이 넘는 변호사와 회계사들이 진땀을 흘렸다. 법률.회계 문제라면 전문지식을 술술 풀어내겠지만 생소한 분야의 문제를 앞에 두고 난감해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음의 100쪽짜리 보고서를 3쪽으로 요약하시오'. 기획예산처에 응시한 변호사와 회계사들도 머리를 싸맸다. 대입 수험생들의 논술시험이 따로 없었다. 사법시험과 공인회계사시험을 통과한 '시험의 달인'들이지만 10명 중 9명꼴로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 한다.

주제만 까다로운 게 아니다. 보고서는 한 항목의 서술이 석 줄을 넘어서는 안 되고, 읽어 내려갈 때 문장이 매끄러운지도 따진다. 시험시간 중 인터넷 검색은 허용된다. 문제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에다 글 솜씨는 물론 정보검색 능력까지 살펴보기 위한 조치다. 답안으로 제출된 보고서는 e-메일로 관련부서에 보내 과장이나 국장들이 점수를 매긴다. 재경부 최광해 혁신인사기획관은 "보고서가 '예쁘고 간략한지'를 집중적으로 따진다"며 "아무리 최고의 엘리트라 해도 순식간에 핵심을 파악하고 순발력 있게 보고할 수 있어야 공무원 조직에 적응이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까다로운 선발 절차를 도입하는 이유는 지원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최종 합격자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5급 공무원 선발에 지원하는 변호사나 회계사들의 경쟁률은 10대1을 쉽게 넘는다. 재경부가 변호사 10명을 뽑는 데 119명이 몰려들었다. 회계사는 2명 선발에 62명이나 응시했다. 8명을 뽑는 예산처에는 82명의 변호사가 응시했고, 5명을 선발하는 회계사 특채에도 104명이 몰렸다. 노동부와 감사원의 변호사.회계사 선발 경쟁률도 10대1을 넘었다.

행정부처와 선발된 사람들은 모두 만족하는 눈치다. 재경부 정정훈 인력개발 총괄과장은 "요즘 들어오는 변호사.회계사들은 전문지식을 갖춘 데다 보고능력도 빼어나 조직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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