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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빌라 요지경|집 한 채 값이 10억 넘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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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단독주택의 분위기와 아파트의 편리를 함께 갖춘 첨단 주거 양식-. 도시 부유층의 취향을 겨냥한 「빌라」 「빌라트」가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전국 부동산 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평수·가격 규제 없이 건축 허가만으로 지을 수 있는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건평 1백 평 이상, 평당 분양가 1천 만원 이상 집 한 채 값이 10억원대를 넘는 초대형·초호화 빌라·빌라트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화제와 물의가 물끓듯한 것이다.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좌절감을 넘어 절망감조차 안기면서 분노의 표적이 되는가 하면 적시의 히트로 몇 달 새 수 십 억원의 떼돈을 챙긴 건축업자들의 「한탕」 신화가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있고 한편에선 분별없는 사치풍조를 개탄하며 제도 보완을 촉구하는 여론도 거세게 일고 있다. 「빌라」 「빌라트」 선풍 요지경 속을 들여다본다.
실태=서울 양재동 46의 6 대두빌라는 2일 건축 허가를 받아 1천6백만원이라는 평당 최고 분양가를 기록하며 95평형 5가구의 분양을 끝냈다.
인근 양재동 68의 l 일대에 일건 주택이 건설 중에 있는 95평형 16가구도 평당 l천 4백만원 선인 가구 당 13억7천7백만 원에 분양이 끝나가고 있으며 반포동 동광발라의 1백 5평형 8가구도 평당 분양가 1천3백만 원에 분양을 끝내고 현재 70%의 건축 공정을 보이고 있다.
올해 1월부터 6월말까지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3개 구청에서 내준 연립주택 건축 허가는 모두 27동 2백 4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동 1백 10가구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소형 연립주택이 거의 없는 이 지역의 상황을 감안, 구청 관계자들은 『이중 90% 정도가 80평 이상의 호화 빌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같은 건축 추세는 지방도 마찬가지로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부산시 중 2동 달맞이 고개 일대 25만평이 통째로 초호화 빌라 촌으로 변하고 있으며 대구·인천 등 대도시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부산 달맞이 고개의 경우 벽산·남경·일신·반석주택 등 서울·대구의 건설 업체까지 몰려들어 모두 32개의 업체가 빌라를 건설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룬 상태.
붐을 타고 건축업자들의 한탕 사례도 화제다.
Q씨는 지난 4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땅 4백 평에 한창 유행인 「빌라트」를 지어 팔아 볼 속셈으로 평당 7백 50만원, 총 30억원에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땅 주인에게 계약금 3억원을 준 Q씨는 곧바로 이 같은 집을 사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을 소개받아 분양에 들어갔다.
사업 규모는 지상 11층 짜리 건물 1동에 69평 짜리 19가구를 건설하는 것으로 분양가는 가구 당 6억 8천 3백만원(평당 9백90만원).
건축허가는 바로 나왔고 입주 대상자들이 지불한 계약금·중도금으로 건축 공사비를 쉽게 충당하며 예정대로 3개월 후인 이번 달에 사업을 끝냈다.
분양을 통해 Q씨가 거둬들인 금액은 총 l백29억7천만원.
땅 값 30억원과 공사비 50억원을 제외하면 Q씨는 3개월만에 50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셈이다.
한편 이 같은 빌라 건설 붐을 틈타 분양 전문업체도 크게 성행하고 있는데 이들 업체들은 건축에 관한 노하우가 부족한 토지주들에게 접근, 건설회사 연결·분양대상 고객유치·세금 문제 해결 등을 해주고 분양 수익에서 5∼20%를 차지하는 것이 보통.
서울에는 K건업 등 20여 개 업체가 분양 전문을 맡고 있으며 골프장·헬스클럽 회원 명단을 확보, 분양 안내문을 보낸 뒤 문의 전화가 걸려오면 『한 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식의 말로 구입을 유도하기도 한다.
호화경쟁=서울 반포동 방배중학교 앞에 건설중인 D빌라의 경우 거실 바닥이 매끈한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돼 있는가 하면 벽난로·2인용 적외선 사우나, 대형 월폴(거품발생) 욕조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시설은 최근 건설되는 빌라에선 기본이다.
퍼래벌라 안테나, 일제 「토토」욕실 세트, 크리스틀로 만든 오스트리아제 샹들리에, 버튼만 누르면 창문에 셔터가 내러지는 미제보안장치, 태국산 원목인 「가딘」으로 만든 문짝 등 세계 최고급 자재들이 마치 경쟁이나 하듯 설치되고 있다.
지난해 말 분양된 1백 50평 짜리 구기동 K빌라의 경우 가구마다 2백 50만원 짜리 스위스 제 정수장치가 설치돼 있고 음료수관은 스테인리스, 난방용관은 동관으로 가설됐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사이에 수입된 침대는 모두 1천9백79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다섯 배가 늘어났다. 샹들리에 전구도 같은 기간 중 9천 5백 41개(20만8천 달러어치)가 들어와 지난해 1만3천8백10개(13만5천 달러어치)에 비해 개수는 줄어들었으나 총 수입액이 오히려 많아 훨씬 고가 품들이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고급인 이탈리아제 샹들리에와 침대의 개당 평균 수입 단가가 각각 30달러, 3백만 달러에 불과한데도 빌라 구매자들로부터 40만원 선과 5백만원 이상을 요구하고 있어 수입상 및 건축업자들이 무려 20배 이상의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양가 폭리=지난해 상반기에 가구 당 면적 60평, 평당 분양가 6백만원 정도에도 제대로 분양이 되지 않던 빌라가 올 들어 「백 평 이상, 분양가 1천만원 이상」이라는 엄청난 규모에도 쉽게 팔리는 것은 강남지역의 주택 선호도가 아파트에서 빌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서울 압구정·대치동 등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이 지난해 폭등으로 현재 평당 1천만원을 넘어서고 있을 정도여서 같은 값이면 아파트와 똑같은 생활구조에다 내부시설도 훨씬 뛰어난 빌라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또 아파트가 매년 수만 채씩 물량이 쏟아져 가격이 이미 안정된 데다 70평 이상은 사실상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희소성 측면에서 빌라의 투자 효과와는 도저히 경쟁이 되지 않는 셈이다.
건축법상 20가구 미만의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사업 승인 및 청약예금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공개 분양을 할 필요가 없고 분양가·건축규모를 임의로 정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빌라 붐을 부추기는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건설업자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비싸야 잘 팔리고 올라도 크게 오른다」는 부동산 원칙에 충실, 4층 건물에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이탈리아 대리석·최고급 수입가구·케냐산 원목 등을 들여와 분양가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업자들은 또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최고 4층까지 지을 수 있는 「연립주택」으로 허가를 받아 주로 빌라를 지어 왔으나 올 들어 분양이 순조롭지 층수 제한이 없고 건축허가만 받되 5층 이상 아파트 형태로 짓는 「건축 허가분 아파트」(일명 빌라트=빌라+아파트)를 앞다퉈 짓고 있다. <이효준·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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