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겸손하게, 야당 대표는 분명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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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민생회담'이 다음 주에 열릴 예정이다. 바라건대 이 회담은 국정의 중요한 분수령이어야 한다. 현재 국정은 혼돈 상태다. 대통령은 개헌이란 허상(虛想)에 잡혀 있고, 내각은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있으며, 탈당 사태로 여당은 쪼그라들고 있다. 힘 빠진 여당은 힘을 가진 제1야당에 눌려 법안 처리를 못하고 있다. 회담이 돌파구가 되려면 양자는 자세를 바로 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동안 말을 많이 했으니 이번엔 많이 들어야 한다. 제1야당 대표는 비판자들의 대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당장은 무엇을 고치고 나머지 1년 동안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한다는 의혹이 왜 생겨나는지, 중립내각이 왜 필요한지, 전작권 환수를 서두르면 왜 안 되는지, 사학법 재개정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의 '급진 개혁파'를 대통령이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들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왜 막혀 있으며 야당이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청와대와 내각의 선거 중립 의지는 어떤 것인지, 사학법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 2월 임시국회에서 연금.사법 개혁 관련 법안 통과가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말해야 한다.

야당 대표는 정중히 듣되 딱 부러지게 말해야 한다. 탄핵의 경험이 있으니 선거 개입 오해의 언행을 삼가라고, 국민이 믿을 수 없으니 확실한 중립내각을 만들라고, 일자리 창출 정책과 부동산.교육 대책은 이런저런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고치라고 말해야 한다. 얘기하지 않기로 한 개헌을 대통령이 꺼내면 "통과 안 될 게 뻔하니 발의도 말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대통령이 회담을 받은 것은 잘한 일이다. 청와대 비서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라. 이제라도 좌표를 찾아 남은 1년을 정말 멋있게 마무리해 주기 바란다. 성숙한 대통령, 반듯한 야당 대표를 목격한다면 국민에겐 좋은 설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