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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에 서민만 ‘골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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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하루가 멀다 하고 소나기식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쏟아내던 금융 감독당국이 규제의 방향을 총부채상환비율(DTI : debt-to-income)에 맞추고 있다. 담보 물건인 집값에 따라 대출한도가 결정되는 관행을 깨고 앞으로 돈을 빌려가는 사람(차주)의 소득을 근거로 대출상환 능력을 평가해 대출을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나치게 담보에만 매달려 대출을 했던 국내 은행들을 놓고, 심지어 ‘전당포식 영업 행태’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던 점에서 감독당국의 DTI 규제 강화 취지는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오랜 기간 구축된 신용평가 시스템을 바탕으로 담보보다는 돈을 빌려가는 이의 상환능력에 초점을 맞춘 대출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아직 신용평가 시스템이 걸음마 단계에 있고,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국내 금융환경에서, 이 같은 금융감독원의 규제는 결국 ‘유리 지갑’인 봉급생활자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괄적으로 DTI 40%(소득 대비 부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이 40%라는 뜻)를 적용하려던 금융감독원은 최근 이 같은 문제점이 불거지자, 시중은행과 여신심사 선진화작업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대출심사 모범규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DTI 제도의 확대적용으로 자칫 발생할 수 있는 선의의 피해자 방지 방법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그러나 신용평가와 소득파악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예상 가능한 갖가지 예외조항을 끼워넣는다 해도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계층은 양산될 수밖에 없다. 또 은행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금감원은 모범규준을 토대로 은행이 대출에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지를 준다고 항변하지만, 이미 은행들의 자체적인 기준안 작성 단계부터 은행에는 ‘하늘’이나 다름없는 금감원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잣대는 지금 보아도 들쭉날쭉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돈 빌려가는 사람의 상환능력 파악 가능한가

금융감독원은 “집값이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했다. 은행들의 대출 방식에 대해서도 ‘약탈자적 대출(predatory loan)’이라고 비판했다. 즉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해주고, 돈을 갚지 못하면 담보를 빼앗아 이득을 취하는 은행의 행태가 약탈자나 다름없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DTI를 적용해 선진적인 대출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금융감독원의 구상은 시작부터 문제점에 봉착했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소득증빙이 불분명한 자영업자.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신고한 소득에 따라 원칙적으로 DTI를 적용할 경우 자영업자들은 대출한도가 크게 줄어든다.

자영업자들은 집을 담보로 사업자금을 융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리한 DTI 적용은 자칫 자영업자의 숨통을 조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추정소득의 범위를 넓히면 탈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돼 봉급생활자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신혼부부나 직장 초년생 같이 현재 소득이 적은 계층이 주택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앞으로 소득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DTI를 적용할 경우 실제 상환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돈을 대출받게 된다.

■실수요자 구제 ‘실효성 거의 없어’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은 모범규준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22일까지 은행들에 여신심사 기준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은행들이 제출한 기준안은 대체로 자영업자의 소득증빙 범위를 확대하고, 신혼부부 등에 대해서는 DTI를 60% 선까지 적용하는 개선책을 담고 있다. 또 투기지역 6억원 이상의 아파트에 대해서는 DTI 40%를 유지하는 내용도 공통적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은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 6억원 이상 아파트에는 DTI 40%를 적용하되, 투기 및 비투기지역의 감정가 6억원 이하 아파트에 대해서는 조건에 따라 DTI를 40~60%까지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출했다.

우리은행은 신혼부부와 미취학 아동을 둔 차주에게는 DTI 60%,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와 개인사업자는 DTI 50%를 각각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교육비 등 생활비 지출이 크기 때문에 DTI를 더 낮게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또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자영업자에 대해 은행 거래실적이나 금융자산, 카드 사용액, 부부 합산 보험료 등 하나같이 추정소득을 인정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은행권이 제출한 기준안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를 토대로 금융감독원은 모범규준을 마련해 2월부터 은행이 자율적으로 적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그러나 DTI 적용이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실수요자 피해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신혼부부에 대해서는 DTI 비율을 높이는 안이 제시됐지만 신혼부부의 정의부터 모호하다. 신혼부부의 범위를 결정할 수 있는 결혼 햇수나 자녀의 유무, 결혼 당사자의 나이를 정해 ‘여기까지만 신혼부부’라고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대부분의 은행은 투기지역 내 6억원 이상의 아파트에 대해서는 여전히 DTI 40%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기준안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주택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입지여건이 좋은 아파트들은 6억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갑작스러운 DTI 규제에 따라 입지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새로 이주 계획을 세워두고 있던 대기수요자들은 높아진 대출 문턱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자영업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용카드 사용액을 통해 자영업자의 소득을 추정하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으나 많은 자영업자는 소득이 노출될 수 있는 카드 사용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 효용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대체자료(참고자료)를 소득추정에 활용한다면 정부가 자영업자의 탈세를 눈감아 주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게다가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봉급생활자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은행 자율성 침해 논란

이처럼 아무리 예외조항을 심사규정에 포함시킨다 해도 갑자기 주택담보대출 심사체계가 소득능력 위주로 바뀌게 되면 피해를 보는 금융소비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에 따른 불만과 부작용도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선진국들이 개별 은행의 심사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도 획일적인 규제 방식보다는 은행별 자율적인 심사 방식이 다양한 금융소비자의 상황에 따른 여신을 집행하는 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금융감독원도 모범규준을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운용하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금융 감독당국이 모범규준을 아무리 ‘자율 규준’이라 강조하더라도 은행이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주택담보대출이 지나치게 증가하고 있는 것에 금감원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대출 증가폭이 컸던 은행들이 바로 신규대출을 전면 중단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국내 금융기관들에 금감원이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금감원 위세에 은행들이 ‘알아서 기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게다가 모범규준에 앞서 각 은행들에 제출토록 한 기준안 작성 과정에서도 금감원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감원이 외부에는 자율규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은행 담당자들을 통해 기준의 방향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별로 대출관행이나 심사능력이 다른데 일괄적으로 대출기준을 만들어 적용하도록 하는 것은 대출을 위축시켜 자금이 부족한 서민에 대한 피해만 키울 뿐 아니라 은행의 경쟁력 향상에도 타격을 입히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소나기식 규제, ‘시장 부작용 우려’

앞서 지적했듯 ‘약탈자적 대출’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DTI 규제는 바람직하다. 그런데 문제는, 부동산 규제들이 그 효과를 분석할 틈도 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게 쏟아져 나온다는 데 있다. 특히 DTI 규제는 대출의 심사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것으로 시장에 대한 신중하고 면밀한 분석이 뒤따라줘야 한다.

그러나 다른 부동산 규제와 마찬가지로 DTI 규제 역시 정책의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무엇인지 꼼꼼히 점검하기도 전에 은행에서 대출 수요자에게 바로 적용될 전망이다.

DTI 규제 외에도 최근 발표된 정책들은 시장에 후유증을 남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 감독당국이 투기지역 내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을 ‘1인 1건’으로 제한하기로 한 조치는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금의 기한연장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기존에 합법적으로 대출 받았던 사람들의 자금운용 계획을 원천적으로 무너뜨릴 우려가 있다.

■‘코드식 규제’는 이제 그만

정부는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영업을 놓고 ‘쏠림 현상’을 지적했지만, 현재 시장이 느끼는 것은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부 정책의 쏠림 현상이다. 금감원이 정부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의 지시를 받는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금융감독의 방향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감원이 명분상으로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가계경제의 건전성’을 내세우며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쏟아내지만, 정부의 코드에 맞춘 ‘보여주기식 규제’라는 점도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과거 신용카드 위기 당시 시장에서는 이미 신용불량자 양산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카드발급 규제에 나서야 했던 금감원은 경기부양이라는 정책적 목표에 맞춰 카드사의 영업을 눈감아 준 전례가 있다.

이번 DTI 규제가 어떤 취지로 이루어지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든 금융회사와 소비자에게 주는 충격은 크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마련되는 모범규준안이 과연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DTI 규제 이렇게 대응하자

대출 기간을 확 늘려 잡아라

정부가 소득에 따라 대출한도를 결정짓는 DTI 규제를 강화하면서 “내집 마련의 꿈은 포기해야 하나”하고 한숨짓는 서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DTI의 원리를 알면, 자금여력을 높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DTI는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 기타 부채의 이자 상환액)/총소득이다. 다시 말해 분모인 소득을 높이거나, 분자인 원리금 상환액과 이자 상환액을 줄이면 된다.

우선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줄이려면 대출기간을 늘려잡으면 된다. 예를 들어 연소득이 5000만원인 근로자가 7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할 경우, 이자율 연 6%의 고정금리를 적용해 10년 만기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으로 대출을 받을 경우 약 1억5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출상환 기간을 20년으로 늘리면 대출 가능 금액이 2억3000만원으로 늘어난다.

또 주택담보대출 외에 기타 부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받은 부채야 어쩔 수 없다고 치지만, 비상용으로 만들어 둔 마이너스통장은 실제 대출이 없더라도 한도만큼 부채로 잡힌다. 만약 마이너스통장에 대출받은 금액이 있다면 기존의 예·적금 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갚는 방법이 있다. 예·적금을 담보로 한 대출은 부채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소득을 늘리기는 어렵지만 숨어있는 소득을 찾아내 뭉치면 대출가능 금액을 늘릴 수 있다. 은행에서 DTI 적용 시 고려하는 소득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외에도 연금소득, 부동산 임대소득 등이 있다. 배우자 소득도 합산되기 때문에 부부의 소득을 함께 증빙해 제출하면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단 배우자 명의의 주택담보대출이 없어야 한다.

예외조항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아직 금감원의 모범규준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 은행들이 제출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은행마다 예외조항을 두는 항목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살펴 은행 창구를 두드리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원정 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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