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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의혹,은감원 뭘하고 있나(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보그룹에 대한 특혜의혹이 시간이 지나면서 증폭되고 있다.
한보그룹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혹은 지난달 21일 4개 거래은행들이 한보철강에 담보도 없이 1백67억원을 대출해준 것만으로도 그 근거가 충분하다 할 수 있다.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한쪽에서는 기업들이 도산하고 있는 마당에 다른 한쪽에서 1백67억원이라는 적지않은 자금을 담보도 없이 특정기업그룹에 대출해 주었다면 그 명분이 무엇이든 특혜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하나는 1백67억원의 무담보대출 이전에 이미 주거래은행인 조흥은행이 1백7억원의 채권확보를 위해 잡고있던 한보주택 명의의 토지에 대한 가압류를 뚜렷한 명분도 없이 해제해 주었다는 사실이고,다른 하나는 1백67억원의 무담보 대출에 은행감독원이 개입했음을 스스로 시인하고 나선 점이다.
은행이나 감독원측은 물론 이같은 사실에 대해 그 나름의 해명을 하고 있다.
가압류를 해제한 것은 채권확보의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고 은행감독원이 개입한 것은 은행간의 대출금 분담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데 그만한 조치를 하면서 그 나름의 논리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말로 사태를 합리화 하려 해도 은행이 채권확보를 위해 가압류 했던 권리를 아무 대가없이 스스로 포기한데 대한 설명은 될 수 없다. 그렇게 해제해 주어도 될 권리설정이었다면 가압류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은행감독원이 무담보 대출의 은행간 대출부담을 조정하기 위해 개입했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더욱 어처구니가 없어 할말을 찾기 어렵다.
도대체 은행감독원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한보가 수서사건으로 지탄을 받는 기업이 아니라해도 은행이 담보도 없는 대출을 해주는 경우 이를 감시·감독할 책임이 은행감독원에 있다. 무담보대출은 대출자금에 대한 회수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바로 불특정다수 예금자에 대한 손실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감독원은 바로 그같은 잘못을 감시·감독해 은행예금자들을 보호하고 은행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본래의 사명이 있다. 그 감독원이 무담보대출을 눈감아 주었을뿐만 아니라 자금분담에까지 관여했다니 그것이 한보에 대한 의도적 특혜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부는 그동안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기업의 도산은 막아야 한다는 명분아래 부실기업에 대한 정리를 실시하면서 은행에 부실채권을 떠넘겨 왔다. 금융시장 개방을 앞두고 은행들의 경쟁력이 문제되고 있는 이유중에는 이 부실채권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부실기업을 은행의 부담아래 정리하는 경우에도 최소한 기업주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그 책임을 물어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하거나 아예 공중분해시킨 일까지 있다.
지금 한보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조치는 이같은 과거의 관행에 비추어 보더라도 형평을 잃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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