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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거래는 불쌍한 조직이나 하는 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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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범죄! 그러나 '완벽한 위계질서와 의리'로 상징되는 것이 조직폭력배의 세계다. 과연 그럴까?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전국 6개 교도소에 수감된 조직폭력배 109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한 결과를 단독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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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약 거래는 '불쌍한 조직'이나 하는 짓

-조직 보호 위해 불가피… 신흥 조직 '베팅' 위해 손 대기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과 달리 마약 등 약물 관련 사업은 조폭들도 극도로 자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마약담당 검사도 만약 폭력조직이 마약분야에 진출해 한 번 걸리면 조직이 깡그리 와해하기 때문에 수익에 비해 위험이 너무 높아 거의 손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부산.인천 등 항구가 있는 지역 조직에서는 마약 거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경남지역 조폭의 상당수는 마약을 다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에도 조직 차원에서 마약을 다루기보다 조직원 개인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조직 내에서도 마약을 하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거나 멀리한다. 때문에 마약을 거래하는 조직원은 그들끼리 모이는 경향을 보인다.

응답자들은 "신흥 조직은 조직 운영과 성장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고 자리를 잡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마약에 손을 대기도한다. 그러나 큰 조직은 마약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약을 취급하는 조직은 같은 폭력조직 내에서도 양아치나 '불쌍한 놈'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5. 이권싸움?…조폭도 '동업' 시대다

-조직 슬림화해 누수 줄이면서 시너지 효과 강구

영화와 드라마가 조직폭력배에 대해 만들어낸 또 다른 이미지는 대낮에 칼부림이 난무하는 이권전쟁의 모습이다. 실제로 1975년 사보이호텔사건, 1986년 서진룸살롱사건 등 과거에는 폭력조직 간의 전쟁이 심심찮게 있었다. 최근에도 2006년 1월 부산 영락공원에서 폭력조직 간의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폭력배들은 한결같이 "옛날과 달리 조직 간에 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큰 전쟁은 조폭 스스로 피한다"고 말한다. 조직 간 전쟁이 벌어지면 모두 장기간 복역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조직 간 싸움은 피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조직 간 충돌은 대부분 조직원 간의 감정적 충돌에 불과하다"는 것. 심지어 "서로 도우며 살아도 힘든 판"이라고 말하는 조직폭력배도 있다.

과거 유흥업소 갈취가 주수입원이던 시절에는 일정한 수익을 놓고 다른 조직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탓에 수익을 높이기 위해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조폭의 사업이 기업화.대형화하면서 위험 분산을 위해 조직 간에 경쟁하기보다 협력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폭력조직이 시행사업에 참여하는 경우 조달해야 할 자금의 규모도 크거니와 부담해야 할 위험도 상당하다. 따라서 우호적 관계에 있는 2개 이상의 조폭이 공동으로 다양한 정보수집 활동을 전개함과 동시에 협력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선다. 이를 두고 조폭 스스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권 사업을 하다 조직의 입장에서 별로 크지도 않은 돈을 놓고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싸움을 했다 걸리면 조직원뿐만 아니라 조직의 생존이 위협받는 등 처벌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직이 일망타진되는 경우도 있다. 요즘 조직은 매우 실용적으로 변했다. 약아졌다. 지분을 나눠 갖는 것이 일상화됐다."

조직이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폭력을 쓸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폭력조직의 규모는 점차 작아지는 경향이다. 요즘은 조직 간의 네트워크가 강화돼 무수히 많은 다른 조직과 연계가 활성화됐고, 또 싸우기보다 협력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조직원의 수가 필요 이상으로 많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직 규모의 간소화는 사법당국의 감시를 피하는 효과도 있다. 조직원이 많을 경우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사고를 치는 조직원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사법당국에 검거되는 확률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말이다.

소득원이 변한 것도 조폭 조직의 슬림화를 가져온 한 이유다. 과거에는 조폭들이 대부분 조직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있는 사업을 통해 돈을 벌었지만, 근래에는 조직과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사업체를 운영한다. 따라서 사업을 위해 조직원이 필요할 경우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조직원을 동원할 뿐, 이들과 함께 사업을 구상하고 전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 같은 조직의 슬림화 경향은 오래된 조직보다 최근에 설립된 조직일수록 더욱 뚜렷하다.

요즘 폭력조직의 또 다른 특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과 달리 합숙을 하지 않는다. 경찰에서 내사에 들어가면 합숙을 하는 형태가 제일 쉽게 적발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통 2 ̄3명씩 자기와 잘 맞는 사람끼리 산다"고 말한다.

6. 중졸.고졸이 84%로 주류

-20대 행동대원→ 30대 행동대장 → 40대 두목급

대한민국의 조폭은 주로 어떤 사람들일까? 학력수준은 고등학교 졸업이 가장 많아 44%를 차지했으며, 중학교 졸업과 초등학교 졸업 비율이 각각 40%와 12% 내외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준보다 낮았다. 조사 대상자 중 재학시절 불량서클 가입 비율은 60% 이상이었다. 연령 분포는 20대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이 30대, 40대 순이다.

조폭들은 20대 이전에는 대부분 정식 조직원으로 활동하기보다 기존 조직원의 하위 계층이 시키는 심부름을 하거나 이들과 어울리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다 20대 초반이 되면 조직에서 하는 일 중 몸을 움직여 하는 일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배인 등의 직함으로 조직원이 운영하는 유흥업소나 상위 조직원이 소개해 준 유흥업소에서 업소 관리를 하는 일이다.

20대 후반이나 30대가 되어 일정 수준의 자금을 확보하거나 자금을 끌어올 수 있게 되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사업을 골라 직접 시작한다. 40대가 되어 큰형님 급에 속하게 되면 사업의 전면에 나서기보다 자신의 자금력을 이용해 사업을 운영한다. 40세가 넘어 운영하는 업종은 대부분 부동산.건설.유통업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 속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성공한 조직원'의 이상적인 경우를 설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현실 속에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조직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사업 수완이나 자금력이 없어 스스로 조직생활을 접는 경우가 많으며, 불법 사업 과정에서 사법기관에 검거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폭력조직은 조직을 탈퇴한다고 해서 보복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피라미드 조직 구조상 누군가는 나가 줘야 하기 때문이다.

7. 기생자.공생자 사이 과도기

-결혼 후 아이 갖고도 지속… 여성 조폭 재소자는 없어

영화 <넘버 3>에서 주인공 한석규는 동거녀 이미연이 아이를 갖자 마음이 약해져 조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조직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결혼해서 자식이 있는 조직원의 경우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반면 가족이 없는 30 ̄40대 조직원은 허탈해 하는 경우가 많다.

조폭 영화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는 영화 <조폭 마누라>와 달리 2006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조직폭력으로 인한 여성 재소자는 없다. 연구원들은 재소자뿐만 아니라 실제 조폭사회에서도 여성 조직폭력배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조폭문화가 사회 일반의 경향성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조직폭력의 환경문제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되는 보고서인 <Steir & Richards>에 따르면 조폭은 약탈자.기생자.공생자의 3단계로 나뉜다. 약탈자 단계의 조직은 자신의 관할구역을 중심으로 폭력행사를 주된 수단으로 하여 유흥업소 등을 대상으로 보호비 명목의 금품 갈취를 소득원으로 삼는다. 기생자 단계 조직은 도박.고리대금업.마약밀매.매춘 등과 같은 지속성이 있는 사업을 통해 자본 등에 대한 매수를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공생자 단계의 조직은 합법적인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기 위해 상업적 시장에서 일반인과 경쟁한다.

그러나 이들의 불법성은 단지 은폐돼 있을 뿐이며 자금 세탁, 부패 관계의 형성 등을 통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여전하다. 이 같은 현상은 요즘이 오히려 이전 단계보다 더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박경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직범죄연구팀 연구원은 "개인적 판단으로는 현재 우리나라의 조직폭력배들은 기생자에서 공생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표면상 조폭 간의 전쟁이 없어지고, 드러내놓고 하는 갈취도 과거에 비해 줄었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더 위험한 상황으로 진입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조폭들끼리 사고를 치면 구속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조폭이 대단히 몸을 사리고 더 교묘한 탈법적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조폭의 잠재적 위험성은 그만큼 더 커진 것이죠."

오늘날 조폭은 드러내놓고 조폭이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문제는 잠재적 협박과 폭력은 이전보다 훨씬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2> 조직 구성원의 월평균 수입

100만 원 미만 3.4%

100만~300만 원 미만 29.2%

300만~500만 원 미만 28.1%

500만~1000만 원 미만 22.5%

1000만~2000만 원 미만 12.4%

2000만 원 이상 2.6%

<표3> 조직의 일을 통해 받는 대가

50만 원 미만 15.9%

50만~100만 원 미만 2.9%

100만~200만 원 미만 27.5%

200만~300만 원 미만 15.9%

300만~500만 원 미만 14.9%

500만~1000만 원 미만 15.9%

1000만 원 이상 7.3%

요즘 조폭에 대한 7가지 오해

1. 의리에 죽고 산다? 돈 오가는 곳이면 형.아우 개념도 흐려

2. 유흥업소에 기생? 부동산 개발사업과 M&A에까지 손 뻗쳐

3. 룸살롱 선호? 수사 위험 덜한 갈빗집 등 식당업 더 좋아해

4. 돈방석에 앉는다? 수입은 샐러리맨 평균 약간 웃도는 수준

5. 마약거래? '걸리면 다 죽는다' 위기감에 마약류는 절대 금기

6. 이권싸움? 사업영역 다양화하면서 한 분야 정면충돌 거의 없어

7. 배신하면 보복? '갈 테면 가라' 등 돌린 조직원 보복은 옛말

오효림 월간중앙 기자 hyolim@joongang.co.kr

[新조폭 그들은 누구인가 ①] 직무 만족도, 경찰보다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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