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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사막의 롤스로이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대명사인 레인지로버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도 타는 영국 왕실 전용차다. 랜드로버는 BMW에서 포드 그룹 산하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영국의 장인 정신을 대표하는 차로 남아 있다.

랜드로버는 54년 역사 동안 7개의 모델을 내놓으면서 전부 사륜구동만을 고집해 왔다. 세상이 변해도 포장도로(온로드)를 위해 비포장도로(오프로드) 성능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랜드로버의 최정상인 레인지로버는 '사막의 롤스로이스'라고도 불린다.

레인지로버는 BMW X-5,벤츠 ML, 렉서스 RX350처럼 차고가 높은 승용차 역할을 하는 온로드 전용 SUV가 아니다. SUV의 기본인 오프로드 성능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온로드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개선됐다. 90년대 후반에는 품질 불량이 불거져 랜드로버 마니아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여전히 랜드로버는 골수 팬을 확보하고 있다.전통을 제대로 지켜온 결과다. 필자 역시 이런 점에서 랜드로버의 상당한 팬이다.

국내에서도 불과 3,4년전만 해도 랜드로버 차량이 출고되면 딜러들은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언제 고객들의 불평이 나올까 조마조마해서다. 품질 불량으로 워낙 고장이 잦아 일일이 고장날 때마다 고치면 한 주도 쉬지 않고 정비공장을 들락날락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랜드로버가 2005년부터 놀랍게 달라졌다. 레인지로버의 바로 아랫 단계인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내놓고부터다. 포드가 경영부진에 빠진 게 오히려 약이 됐다. 포드그룹에서 그나마 수익을 내던 볼보.랜드로버에 더 투자했고 품질 개선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기품있는 디자인>

부분변경(페이스 리프트)한 2007년형 레인지로버는 위풍당당 그 자체다. 실내는 호화스러움의 극치다. 그렇다고 호화스러움 때문에 이 차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잘 달리고 잘 설뿐 아니라 길이 아닌 곳도 잘 달린다. 달리는 즐거움을 떠나 품위를 지켜주는 차라고 할 만하다. 부분변경이라고 하지만 안 바뀐 것은 이름뿐이라고 할 정도로 새롭게 바뀌었다. 당당한 디자인은 거의 그대로지만 명품을 만들고자 하는 장인 정신이 되살아나 모처럼 제대로 차를 만들어 낸 것이다. 눈발이 흩날리는 1월 초순, 레인지로버를 영동고속도로 용평스키장을 가는 길에 만났다.

레인지로버는 랜드로버 모델 가운데 바로 아랫 기종인 디스커버리3와 비교했을 때 품위에서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그저 타고 달리는 용도로만 쓰자면 디스커버리3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레인지로버는 타는 것 자체로 품위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결코 돈이 많다고 살 수 있는 차가 아니다. 레인지로버보다 더 잘 달리고 더 럭셔리한 차도 있다. 랜드로버의 역사와 정통성, 그리고 그 차가 주는 품위를 이해할 때 1억이 넘는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랜드로버는 1996년까지 BMW 산하에 있었다. 새로 나온 레인지로버도 아직까지 부분부분 BMW 요소를 갖고 있다. 직선을 위주로 한 강한 디자인 요소는 랜드로버의 디자인 정통성이지만 BMW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각진 헤드라이트와 라디에이터 그릴에선 영국의 위엄과 강인함을 조화롭게 다가온다.

<호화스러움은 이런 것>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호화 요트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원목 트림이다. 보는 것뿐 아니라 감촉에서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원목으로 감싼 대시보드는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또 은빛 메탈 그레인으로 처리된 센터 페시아에 달린 각종 버튼은 알루미늄 트림으로 처리돼 원목과 잘 어울린다.

시트 히팅은 몇 단계로 나눠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다. 중앙에 위치한 내비게이션 겸용 AV 모니터는 차량의 모든 작동상태를 한눈에 전해준다. 2001년 BMW 7시리즈에 처음 나온 조그셔틀형 i드라이브와 비슷한 동작으로 작동할 수 있다.(i드라이브보다 사용이 훨씬 편하다.) 단지 국내에 맞도록 재장착한 내비게이션과 DMB위성방송 리모컨 등 모두 세 개를 사용해야 하는 점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연한 베이지색 가죽시트의 재질이나 전체적인 마무리는 벤츠 S클래스의 고급감과 비교할 만하다.

리모컨으로 시동을 걸지 않고 꽁꽁 언 차량 내부를 연소 히터를 태워 데워주는 무선 히팅 장치는 한겨울 스키장에서 무척 유용했다. 스위치만 작동하면 순식간에 가죽 핸들이 따뜻해지는 핸들 히팅 열선도 겨울이 긴 한국에선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시트는 5인승이다. 적재함 공간을 보면 조금 무리해서 7인승으로 해도 무방할 듯 싶다.

뒷좌석 승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장치도 대폭 개선됐다. 앞좌석 헤드레스트에 좌우 각각 별도의 모니터가 달려 있다.

후면 테일게이트는 키가 작은 운전자를 위해 여러모로 배려했다. 윈도 게이트가 열리고 하단에 적재함을 스위츨 눌러 열면 전체 적재함을 편편하게 해 손쉽게 짐을 실을 수 있다. 용평으로 가는 길에 스키 두 개를 2열 좌석 중간에 달린 스키캐리어를 열고 실어 봤다. 좌석 중간에 있는 접이식 시트를 내리고 뚜껑을 열면 스키 세 개까지 무난하게 실을 수 있다. 어른 네 명이 여유있게 좌석을 차지하고 말이다.

변속기 뒤에 달린 조그셔틀식 주행장치는 오프로드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레인지로버만의 무기다. 디스커버리3에 달린 것과 기능은 같다. 2005년 스페인 산악지대에서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시승하며 마음껏 써본 기능이다. 육안으로 봤을 때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언덕과 심한 바위를 잘도 타고 넘는다. 때로는 사막과 같은 모래밭에서 힘차게 탈출하는 스릴도 느낄 수 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내리꽂아 버릴 것 같이 가파른 언덕에서도 이 장치를 신뢰하면 자동으로 변속기어를 조절해 시속 10㎞ 이내의 속도로 내려간다.

<2.7톤을 가볍게 느끼게 하는 수퍼차저>

레인지로버는 최근 SUV가 온로드 성능에 치중하는 추세에 맞췄다. 오프로드 특성을 버린 게 아니라 온로드 성능을 보강한 것이다. 특히 고속순항 성능이 향상됐다. 4.2ℓ V8 가솔린 수퍼차저 엔진은 랜드로버 모델 중 출력이 가장 높다.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57.1 kg.m/3500rpm의 성능을 낸다. 최대토크는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엔진회전수에서 나와 가속할 때 상당히 유용하다. 이 엔진은 레인지로버 스포츠에 이미 달려 검증받은 것으로 재규어 엔진을 튜닝했다.

엑셀 페달에 오른발을 살짝 올려놓기만 해도 2.7톤의 중량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수퍼차저는 기다림이나 오차 없이 부드럽게 작동한다.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은 저음의 엔진음을 통해 느낄 정도다.

가속력은 상쾌하다. 초기 가속력보다는 시속 80㎞ 이후 고속에서 가속력이 좋다. 시트에 몸이 파묻히는 가속력의 쾌감을 느낄 정도다. 고속도로에선 시속 180km를 가볍게 낸다. 어떤 흔들림이나 핸들링에 불안한 징후를 느낄 수 없다. 영동고속도로 4차선 구간에선 시속 200㎞를 넘었다. 실내 정숙성은 렉서스 수준까지 올라왔다. 대단한 변신이다.

트랜스미션은 ZF제 6단 자동으로 BMW.아우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변속기다. 브레이크는 스포츠카나 럭셔리 차량에 많이 쓰이는 브렘보제 브레이크를 달았다.

'2.7톤의 기름먹는 하마일까' 걱정했던 연비는 고속도로에서 예상보다 좋았다. 제원표상 5.5Km/ℓ지만 440㎞ 용평 스키장을 왕복하면서 고속도로에서 7Km/ℓ 정도 나왔다. 하반기에는 가속력과 경제성을 겸비한 디젤 모델도 선보인다. 주말의 여유를 품위와 함께 보내려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레인지로버는 '강추'다.

김태진 기자

<주요제원>

전장×전폭×전고 4,972×2,043×1,903mm,

앞뒤바퀴간 거리(휠 베이스) 2,880mm.

차량중량 2650Kg

승차정원: 5명

엔진 4,197cc V형8기통 DOHC 32밸브

최고출력 400bhp/5,750rpm에

최대토크 57.1 kg.m/3,500rpm,

구동방식 : 풀 타임 4WD

트랜스미션 6단 자동

서스펜션 : 앞/뒤 더블 위시본(에어 서스펜션)

타이어 : 255/50R 20인치

최고속도 210km/h

0-100km/h 가속성능: 7.5초

최소회전반경 : 6.0m

연비 : 5.5Km/ℓ

연료탱크 용량: 104리터

가격 1억4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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