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홍주 주미대사가 말하는 노 대통령 방미(일요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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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방압력용 대접 아니었다”/미 남북통일 지원 확인 큰 성과/정상 테니스 부시가 먼저 제의
노태우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에 의한 또한차례 한미 정상회담이,그것도 「국빈방문」으로 이루어진 것을 놓고 국내에서는 혹시 미국이 한국에 어떤 압력을 가하거나 중대한 정책변경을 설명하려한 게 아니냐는 기각을 갖고 있는데 대해 현홍주 주미대사는 매우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8개월의 유엔대사를 거쳐 지난 4월 워싱턴에 부임한 「초년병」외교관 현대사는 자신의 신임장 제정때 부시 미 대통령에게 제시한 노대통령의 방미계획을 그간의 일정·의제조정작업을 거쳐 실현시킨 것 자체도 의미있는 일이고,더구나 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매우 상징적으로 확고히 과시한 성과를 거두어 흐뭇하게 생각하는데 일부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하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대통령 일행을 떠나보내고도 만찬등 저녁행사로 계속 바쁜 현대사를 전화로 연결,한미 정상회담의 언저리를 짚어보았다.
­부임하자마자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을 축하한다. 우선 한미 정상회담이 그동안 여러번 있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열린 배경은.
『갑작스럽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그동안 네차례 접촉이 있었는데 이같이 정례화된 접촉을 이번에 예의·격식을 갖춰 한것 뿐이다. 회담하자는 것은 우리측 의견이었지만 국빈방문으로 예의를 갖추어 하자는 것은 미국측 의견이었다.』
­그같은 미국측의 예우에는 쌀 및 농산물 개방 등 한국측의 양보가 있거나 이를 미국이 기대했기 때문이란 설도 있는데.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미국은 민주화를 추진하고 이룩한데 대해 노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논란이 있었지만 북방정책을 우리가 앞서 추진함으로써 한반도 및 주변정세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그리고 두분끼리의 개인적인 관계가 많이 작용한 것 같다.
또 노대통령이 1년사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세번이나 만나는등 한반도와 세계정세도 많이 변해 서로 의논할 필요를 공감한데 따른 것이다.』
­노대통령·부시 대통령의 개인적 친분은 어느 정도인가.
『그간 여러번 만나는동안 상대방을 잘 알게 된 것 같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분사이엔 많은 편지와 전화·전보 등이 오갔다. 걸프전때 동맹국으로서 관계를 재확인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두분사이엔 비슷한 점도 많다. 비판받으면서도 할 일을 한다든가,각기 2인자로 있으면서 느꼈던 처신의 어려움이나 고통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두 대통령과 두 대사간의 테니스는 누가 하자고 제의한 것인가.
『4월초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번엔 꼭 노대통령과 테니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후 미국이 제시한 일정에 들어가 있었다.』
­대사조가 대통령조에 졌는데 대사들이 봐준 것 아닌가.
『두분께 일부러 져드린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상대가 일부러 져주는 것을 몹시 싫어해 그런 사람과는 다시 게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번 정상회담 성과로 많은 것이 지적되고 있지만 회담을 추진하고 교섭을 맡았던 당사자로서의 평가는.
『우리의 젊은 세대중에는 미국이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분명히 한국의 통일에 지원세력임을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확인했다.
이번 회담은 또 두나라간의 연결고리가 정치적으론 민주주의,경제적으론 시장경제임을 확인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이익에 맞을뿐 아니라 한국·미국이 가까워질 수 있는 분명한 길이다.
새로 태동되는 새 국제질서도 제일 중요한 핵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고,그 가치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철학으로 소련·중국도 인정해가고 있다.
특히 미국으로선 2차대전후 많은 나라를 지원했지만 이같은 철학,즉 정치·경제적 자유주의에서 모델로 성공한 한국을 지지하고 싶어한다.』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한후 미국이 대북 정책을 변화하고 관계를 개선할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 이와 관련,어떤 논의가 이번 회담에서 있었는가.
『계속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한치의 이견도 없다. 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을 할때 이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필요와 변화에 의해서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남북대화의 속도와 다르게 진전시키지 않을 것을 약속했고 남북관계나 통일에 주도적 역할이 아니라 종적인 역할을 다짐하며 남북관계에 미국이 지원할 것이 있으면 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남북관계에 지원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지금 구체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고 미국은 한국의 요구에 따라,그 의사를 존중해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이나 대화의향을 갖고 있다고 느꼈는가.
『접촉·관계수준의 상향등에 구체적 스케줄을 갖고 있지 않다는 판단이다. 미국의 입장은 모든 것이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국가로 행동하고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진지성을 인정받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또 북한과 관계개선이 없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북한간의 접촉수준이나 시기는 전적으로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
­노대통령은 체니 미 국방장관과도 만났는데 주한미군의 1단계 감축이후 2단계 감축도 논의되었는가.
『2단계 감축은 이미 천명한대로 그때가서 규모나 시기 등을 주변상황,즉 북한의 태도를 주시하면서 심의키로 했다.
따라서 미군의 추가감축은 북한의 태도와 연결되겠지만 우리로서는 한반도에 평화정착을 위해 주한미군 문제,우리 군대의 감축문제,전쟁가능성 등을 진지하게 논의·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남·북한이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이같은 문제를 합의하면 한국인들의 정치적 성숙도가 돋보이게 될 것이다.』
­미국에선 최근 일부 학자나 언론에 의해 북한의 진지성을 시험하기 위해,혹은 전쟁 억지력으로서 지상핵의 기능에 문제를 제기하며 한반도로부터 철수를 거론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 한반도 혹은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안보개념에 변화를 시사하는 것은 아닌가.
『정부안에서도 그같은 논의가 많이 있고 그 과정에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문제는 남북간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고 상황에 따라선 발빠른 조절이 가능하다. 핵무기뿐 아니라 모든 것의 활용주체는 남·북한이다.』
­이번 회담에서 한소 선린협정체결등 정부의 급격한 대소 접근에 미국이 불편한 생각을 표시하지 않았는지.
『그같은 시각은 우리 문제를 우리 눈으로 보지 않는데서 나온 우려다. 미국은 과거 군사적으로 소련을 우려했지만 소련이 변하고 있고 한국의 대소 접근이 아시아안정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는 우리 시각에 동감하고 있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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