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받은 뇌물 너무 많아 기억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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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6급 공무원이 받은 뇌물이 너무 많아 기억조차 못한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보도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위에서는 수백억원씩을 정치자금이라는 명목으로 해먹고 아래서는 아래대로 챙겨먹으니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보도에 따르면 뇌물수수 혐의로 울산지검에 구속된 이 공무원은 1998년 9월부터 3년간 거의 매일 10만~1백만원씩 월 평균 2천만원가량을 받아 친인척 명의의 차명계좌에 입금시켜 관리해왔다고 한다. 더구나 월급과 수당은 손도 대지 않은 채 한 통장에 입금해 두고 받은 뇌물로 자녀에게 상속까지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일선 공무원들의 금품수수 비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 수법이 날로 대담해지고 상습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야외 주차장에서 보석함을 건네받다가 현장에서 적발된 경기도 어느 지역 공무원의 자동차 안에선 1천90만원의 현금과 수표가 발견되기도 했다. 빼돌린 회사 돈 70억원을 빈 빌라에다 쌓아두고, 비자금 사건 재판부가 승용차에 현금 50억원이 들어가는지 현장검증까지 하는 세상이니 공무원들도 덩달아 춤을 추는 것인가.

울산시 공무원이 아무 거리낌 없이 장기간 범죄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물론 뇌물수수 범죄의 1차적인 책임은 공무원 스스로에게 있다. 하지만 그 같은 비리가 장기간 이어진 것은 감독체계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3년 동안이나 상급자는 무엇을 했고, 감사 담당자들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지휘선상의 잘못을 가려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공직자 윤리규범을 만들고 정부 내에 부패방지 기구도 만들었다. 그런데도 공무원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도 울산시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감히 변명할 수 있는가. 공무원들에 대한 자체 감시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철저히 점검해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