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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여성 위에 놓인 초밥 드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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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주 토요일 밤 미국 시애틀의 한 작은 일식집. 빼곡이 몰려든 고객들이 숨을 죽인 채 침을 삼켰다. 자정이 되자 꽃과 촛불로 장식된 이동식 스시(초밥)식탁이 나타났다. 이 요리의 이름은 '네이키드 스시(Naked Sushi)'.

식탁 위엔 젊은 백인 여성이 전라(全裸)로 누워 있고 가슴.배.허리.허벅지의 하얀 피부 위로 초밥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물론 주요 부위는 꽃으로 가려져 있고 자세히 보면 피부 위에도 비닐 랩이 씌워져 있다. 식당 매니저는 고객들에게 "여성의 몸을 만지거나, 음담패설을 해서도, 팁을 주어도, 말을 걸어서도 안 된다"는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지난주 CNN.ABC방송과 주요 신문에 잇따라 소개되면서 단숨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식집으로 떠오른 '본자이 아시안 펍 앤드 비스트로'의 광경이다. 하지만 식당에 몰려드는 손님만큼이나 식당 바깥에는 "창녀 스시집을 폐쇄하라"는 피켓을 든 여성단체들의 시위대도 잇따라 등장했다. 지역 라디오의 토크쇼와 신문의 독자란에는 미국 본토에 처음 등장한 '이색 요리'를 놓고 찬반 의견이 쏟아졌다.

이 같은 요리의 원조는 일본.미국에는 1993년 숀 코너리 주연의 '라이징 선'이라는 영화로 처음 알려졌다. 이후 LA의 영화배우들이나 뉴욕 상류층의 파티장에 '네이키드 스시'를 제공하는 케이터링 회사들이 몇군데 생겨나기도 했지만, 일반 식당으로는 이곳이 처음이다.

아시안여성보호센터의 노마 팀방 소장은 "돈을 벌려고 사람의 몸뚱이를 도구로 이용하는 명백한 인격모독인 데다 일식집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가뜩이나 아시아계 여성들을 성적 노리개로 보는 미국 사회의 편견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식당의 주인은 명문대학을 나온 한인동포 2세 청년들이다. 뉴욕주립대 공대 출신의 홍준우 사장(32)은 "지난 5월 창업한 뒤 초밥에 익숙지 않은 백인 손님들을 끌기 위한 구상을 하던 중 이벤트사가 이 아이디어를 내놓기에 채택했다. 여성단체들의 항의가 있지만 이로 인해 식당이 널리 홍보돼 오히려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 워싱턴주법 상 젖꼭지 등 주요 부위가 노출되지 않고 음식과 맨살이 닿지만 않으면 불법이 아니어서 보건소.주류 당국의 허가도 이미 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아시아 여성단체들과 교민사회의 정서.

홍사장은 "'같은 한국인이 이런 사업을 하는 게 수치'라고 말하는 동포분들이 있지만, 그렇게 따진다면 불법으로 안마시술소다 뭐다 하는 것이 더 창피하지 않으냐"며 이는 건전한 마케팅 수단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반대주장도 일리는 있다며 앞으로는 "여성 대신 백인 남성을 벗겨 식탁 위에 올려놓을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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