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는 일본경제] 下. 다시 세계경제 중심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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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비행기 앞바퀴는 제대로 공중에 떴다. 이제 뒷바퀴(금융)만 뜨면 '새로운 10년'을 향한 이륙에 성공할 것이다."최근 일본 산업현장은 전에 없는 활기로 가득 차 있다. 1980년대 후반과 같은 활력이 되살아날 정도는 아니지만 지난 10여년 동안의 하드 트레이닝으로 탄탄한 근육질로 단련됐다.

금융부문의 재건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일본이 다시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80년대 후반 '경제대국 시절'과 '고난의 90년대'를 두루 겪은 대기업 부장 3명과 중소기업 사장 3명으로부터 "일본은 이제 끝났다"는 비아냥을 듣던 지난 10여년 동안 어떻게 견디어왔고 앞으로 일본 경제의 모습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들어봤다. 샤프의 우노 부장은 사정상 사진촬영에는 응하지 않았다.

▶오시야마 다카시(押山隆) 캐논 디지털카메라 사업부장=90년대가 일본에는 긴 불황이었지만 '기회의 10년'이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기술개발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한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10년'동안 공들여 개발한 'DIGIC'라는 카메라 엔진기술은 미국의 인텔도 감히 흉내를 못 낸다. 그동안 필름 카메라 1억6천만대를 팔며 축적한 기술은 돈으로 따질 수 없다.

▶가와다 다쓰오(川田達男) 세이렌 사장=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는 90년대 초 버블이 꺼진 뒤에야 진정한 기업 혁명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가격 등에서 중국 등에 경쟁력을 상실한 분야에 대해선 집착하지 않고, 그들이 따라 오지 못하거나 따라 오더라도 오랜 세월이 걸리는 기술을 개발하는 쪽에 치중한 것이 성공했다. 이제는 우리 고유의 디지털 섬유기술로 패션의 고장 이탈리아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우노 유키야스(宇野之康) 샤프 홍보부장=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붐이 대단하다. 그런데 이는 일본 업체들이 장기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연구개발해 온 '주특기'분야다. 샤프의 경우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20년'을 만들어내기 위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

일본 경제 전체적으로도 근육질이 됐다. 더구나 불황을 겪으면서 업체끼리 똑같은 분야에서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제각각 고유의 색깔을 찾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예컨대 샤프 하면 액정이듯 NEC는 연료전지, 마쓰시타는 DVD레코더, 산요는 리튬전지에서 압도적인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도 다다시(新道忠志) 신도섬유 사장=우리는 지방에서 옷깃.리본 등 섬유와 산업자재 등을 다루는 조그만 중소기업이다. 하지만 회사 창립 후 35년간 곁눈질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판 결과 전 세계 섬유 부속물 시장의 20%를 장악했다. 수익성 있다고 판단되는 분야에 초점을 맞춰 포기하지 않고 시장을 개발해 온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무라이 료지(村井良二) 소니 상품기획 총괄부장=외부에서는 흔히 소니에 대해, 그리고 일본 경제에 대해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역으로 이를 대단한 기회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싶다. 좁게는 소니의 구성원들, 넓게는 일본 국민은 위기를 느끼기 힘들었을 뿐, 일단 위기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대단한 힘을 발휘해 왔다. 불황을 거치며 잃어버린 것은 솔직히 '자신감' 하나였다. 알고 보면 그동안 국민총소득도 줄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선 기업 현장의 에너지가 전에 없이 충만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카노 마사유키(岡野雅行) 오카노공업 사장=우리 회사는 종업원 6명으로 꾸려 나가는 금형회사이지만 우리는 불황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 결국은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넘버 원'은 나중이다. '온리 원'이 우선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같은 조그만 회사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소형 리튬이온전지 케이스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고 지난해에는 '찔러도 안 아픈 주사기'를 개발해낸 것이다.

▶우노 유키아스 샤프 부장=이제 일본 업체들의 저력이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샤프가 속한 디지털 가전분야뿐 아니라 정밀.전자 등 거의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2005년부터 2010년에 걸쳐 세계시장에서 더 확고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본다. 자신의 분야에서만큼은 남들이 넘볼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일본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게다가 일본 기업들은 10여년 전에 비해 체질 자체가 변했다.

▶무라이 료지 소니 부장=불황 속에서도 '재팬 스탠더드'속에 안주하며 보호받아온 일본의 관료와 금융이 최근 들어 "우리가 교만했었다"는 사실을 깨닫은 것 같다. 따라서 반드시 '리바운드(재도약)'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10여년간 잠재력을 충분히 축적했다고 본다.

▶신도 다다시 신도섬유 사장=일본인의 DNA는 기본적으로 성실하다. 그런데 버블 때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뭐 돈 되는 것 없냐"며 이상한 분야에까지 손을 뻗쳤다. 그러던 기업들이 이제는 원래 일본인의 DNA에 맞게 성실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본 경제는 한번 '나체'가 돼봤기 때문에 이제부터 힘을 낼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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