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 달에 4번 생중계한 대통령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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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선 대통령은 진정성이 부족하다. "민생은 나에게 송곳"이라며 자성하는 듯하다가도 책임의 상당 부분을 전임자들에게 돌렸다. 어제는 한술 더 떠 '미래의 대통령'들에게 이상한 예단을 던져놓았다. 그는 "경제정책에 무슨 차별성이 있나. 한번 해보라"고 했다. 23일엔 자신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아 경제가 튼튼해졌다고 주장하고는 25일 남에게는 차별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앞뒤가 엉킨다. 한국 경제는 부실한 대통령을 가지고도 민간의 노력으로 지난 4년간 대통령의 수치처럼 성과를 보였다. 만약 대통령이 건실했다면 사정이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수만 단어가 나왔지만 희망의 메시지가 별로 없다. 물론 대통령은 남은 1년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양극화 해소, 성장잠재력 확충, 혁신 주도형 경제정책, 강력한 부동산 대책, 연금개혁, 사법개혁 등을 말했다. 논란이 됐던 임기단축과 무리한 남북 정상회담 추진도 없을 거라 했다. 그러나 이처럼 말이 많아도 신뢰와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은 말의 양(量)만큼 실천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 60~70%와 야당들이 반대하는 개헌일랑 그만두고, 중립내각을 구성해서 대선에서 손을 떼고, 북핵 같은 안보 현안과 부동산.일자리 같은 민생 현안에 구체적으로 매달려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개헌을 안 하겠다는 야당과 대선주자들을 공격하고, 엉뚱한 대연정을 안 했다고 비난하고, 신년연설 60분 중 외교.안보엔 1분도 채 할애하지 않았다. 어제는 불안감에 대출로 집을 산 국민에게 "왜 앞질러 샀느냐"고 했다.

대통령은 이제 말은 그만하고 침묵과 성찰과 실천의 세계로 들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