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투자와 일자리를 차버리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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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증설이 끝내 무산됐다. 당초 하이닉스는 이천에 13조5000억원을 들여 12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 생산라인 3개를 증설하고, 6000여 명을 고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반년을 질질 끌더니 결국 올해 청주에 1차 라인을 짓는 것만 허용하기로 했다. 이 정부 임기까지는 이천공장 증설을 절대 못해 주겠다는 얘기다.

하이닉스는 난감해졌다. 청주에는 공장 부지도 없다고 한다. 지금부터 부지를 새로 확보하고 공장을 지으려면 7300억원이 더 들어간다. 돈도 돈이지만, 공사기간이 족히 1년은 더 늘어나는 모양이다. 하이닉스는 분초를 다투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내년에는 반드시 양산체제에 들어가야 한다며 발을 구르고 있다.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딱한 노릇이다.

정부가 이천공장 증설을 반대하는 표면적 이유는 상수원 구역인 이천에 구리 등 유해물질이 나올 수 있는 공장 증설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이닉스가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도록 조처하겠다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환경 문제보다 더 거대한 장벽은 지역 균형발전과 수도권 규제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여기에 끼여 경제부처는 눈치를 보고, 해당 업체는 가슴앓이를 하면서 세월만 축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신년 연설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관료적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다음 날 정부는 공장을 짓게 해 달라고 통사정하는 기업의 요청을 묵살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200대 기업 중 제조업체의 설비투자가 지난해보다 1.3% 줄어들 것으로 조사됐다. 설비투자 감소는 2001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노사 관계가 불안하고, 대내외 경영환경이 좋지 않은데 규제까지 겹겹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정부의 코드가 투자를 막고, 괜찮은 일자리를 차버리면서 언제까지 '경제는 과거 정부 때 골병이 들었고, 이 정부는 민생 문제를 만든 책임이 없다'고 둘러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