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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나눔, 문화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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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초가 지붕 얹은 마을 도서관. 영하의 날씨에도 아이들은 날마다 모여든다. 책이 있기 때문이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작은 도서관의 운영자 봉미연씨가 아이들과 독서 토론을 하고 있다. 순천=손민호 기자

'한국 문학'에 무더기 나랏돈을 쏟아부은 지 3년째다. 처음엔 문학회생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구호도 '힘내라! 한국문학'이었다. 고사 직전의 한국 문학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뜻이 분명했다. 정부는 로또 판매기금 52억여 원으로 한국 문학을 사고, 하여 문인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고, 한국 문학을 도서관.병원.교도소 등지에 무료로 나눠줬다. 지난해엔 문학나눔 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사업의 본령이 문학 부양이 아니라 문화 소외지역의 혜택을 넓히는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우수도서 선정과정을 놓고 군소리가 흘러나왔고, 무엇보다 문학이 구휼의 대상이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잡다한 잡음 속에서도 밝은 소리 하나 들려왔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외진 마을의 어린이,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 군부대 장병의 목소리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전통 한옥마을인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100채 남짓한 성안 마을은 온통 초가집 천지다. 여기에도 도서관이 하나 있다. 낙안읍성 작은 도서관. 사립문 밀치고 들어가는, 대여섯 평 남짓한 아담한 초가집 도서관이다.

겨울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스무 명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사방의 벽은 책들로 빼곡했다. 문학나눔 사업 추진위원회가 이태 동안 지원한 한국 문학은 모두 775권. 아이들이 얼마나 책을 빌려보는지 도서대여 목록을 훑어봤다. 모두 104명의 이름이 보였다. 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른도 제법 됐다.

아버지가 성 안에서 사진관을 한다는 송영우(11)군이 가장 돋보였다. 지난 한 해 영우는 무려 112권을 빌려봤다. 사흘에 한 권 꼴로 읽은 셈이다. 아이들은 대체로 1년에 50권 넘게 책을 빌리고 있었다. 새 학기면 5학년이 된다는 김현주(11)양은 '초정리 편지'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했다. 한글 창제 원리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쓴 동화다. 마침 박세이(9)양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언 두 볼이 발갰다. 책을 빌리려고 세이는 20분 넘게 걸어왔단다. 도서관 운영자 봉미연(41)씨의 설명을 들었다.

"방학 때니까 아이들이 날마다 나와요. 날도 추운데 마땅히 갈 데도 없거든요. 여름방학 땐 마흔 명 넘게 아이들이 모여요. 그러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아이들을 받죠. 시골에 살면 책을 빌려볼 데도 마땅치 않잖아요.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도 자주 들러요. 다 1~2년 새 바뀐 일이죠."

아이들만 책을 받아보고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해군 원사 박찬식씨는 아래와 같은 감사의 글을 문학나눔 사업 추진위원회 홈페이지에 남겼다.

'해군 최신예 구축함 대조영함 장병일동을 대표하여 인사를 드립니다. 함 내에서 개인이 보유한 도서를 열심히 보고 또 바꿔 보다 우수문학도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위원회에 답지한 감사의 편지도 읽었다. 광주교도소, 경기 안성 노인복지회, 전북 익산 시온육아원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이중엔 전남 신안 압해도의 압해서초등학교 4학년 이은진양이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도 있었다.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위원회 김근 팀장은 "이제 막 문학을 나누고 만나는 사업이 시작됐을 뿐"이라며 "사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만남으로부터 창의적인 것이 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우수도서 신청방법=문학나눔 사업 추진위원회 홈페이지(www.for-munhak.or.kr) 신청게시판에 신청. 위원회에서 확인 거쳐 보급처 선정.

순천=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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