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과일 "홍수"|멍드는 농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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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올해를 「바나나원년」이라 할 정도로 수입바나나가 연초부터 물밀듯 쏟아져 들어와 식탁에까지 밀어닥친 농산물수입개방시대를 실감케 하고 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조차 열대과일을 비롯, 진귀한 수입과일들을 흔하게 접하게 된 것은 근년 들어 우리생활 주변의 큰 변화 중 하나다.
과일수입액은 주스원액 등 가공품을 포함, 89년에 1억 달러를 넘어서 지난해에는 1억5천4백22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이중 신선과일류(생과일)는 3천6백25만 달러.
그러나 올해는 수입자유화 된 바나나 하나만으로 30만t 내외, 2억 달러 어치 이상이 도입될 전망이고 94년부터는 배·복숭아 등 국내에서 많이 나는 과일들도 수입문호가 열리게 돼있어 외국산 과일수입이 점차 홍수를 이룰 전망이다.
수입이 개방돼 요즘 들어오고 있는 외국산과일은 바나나 외에도 파인애플·자몽(그레이프푸르츠)·키위·레몬라임·아보카도 등.
망고·파파야·멜런 등도 수입이 자유화 돼있으나 과일 속에 번식하는 외파리 등 방역상의 문제로 실제 도입은 안되고 있다.
수입과일의 집산지 중 한곳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따르면 지난해 경우 수입과일 거래량이 9천3백46t으로 전체과일물량(31만1천2백t)의 3%정도였으나 올 들어서는 4월까지 약 4만t이 반입돼 과열 전체거래량(9만5천t)의 42%를 넘어섰다.
물론 바나나 때문이다.
수입바나나는 지난 5월말까지 작년 연간 도입량의 거의 8배인 16만여t이 들어왔는데 그중 3만7건t(4월말기준)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거래돼 같은 기간 반입된 사과(2만t)·귤(1만5천t)을 제치고 최다거래품목으로 됐다.
요즘 수입되는 바나나는 필리핀과 에콰도르산이 거의 90%. 지난해까지 농산물유통공사를 통해 국산 배 등과 구상무역 돼 들어오던 대만산은 태국·베트남·중국산 등과 함께 극히 일부물량에 그치고있다.
미국계 자본인 델몬트와 돌, 일본의 스미토모 등 필리핀과 에콰도르의 바나나 판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른바 7대 바나나 메이저들이 지난해 이미 국내에 진출해 중소무역업체들과 독점공급계약을 체결해놓은 상태며 여기에 계속해서 군소 업체들이 가세, 올 들어 바나나 수입실적을 갖고있는 업체만도 80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있다.
이들 군소 업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농산물무역업체거나 그 동안 바나나거래에 경험 있는 시장도매상인, 재배농가 등의 신설법인들이 대부분이며 선박대리점·잡화무역상사 등 온갖 분야의 무역업체들도 끼여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들이 사회여론을 의식, 주춤한 사이에 도입 차익을 노려 한 몫 하겠다고 너도나도 뛰어든 것이다.
수입과일의 유통과정은 생산농가로부터의 수입과정이 생략되는 만큼 국내과일 경우에 비해 단순하다.
도매시장 경매과정을 거치도록 의무화된 바나나를 예로 들면 수입업체가 가락시장 등에 상장하면 중간도매상이 이를 경락 받아 청바나나 상태인 것을 후숙 가공, 유통업체와 소매상에 공급하고 있다.
수입과일과 관련해 가장 문제는 업체들간의 무문별한 도입경쟁과 과다한 유통마진이다.
바나나의 경우 공급물량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지난달 초까지도 소매가격이 ㎏당 3천5백원선으로 유지, 이중69%인 2천4백14원이 유통마진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중앙회가 지난 3월 분석한 바에 따르면 ㎏당 4백88원 물품대(산지도입가격)에 1백9%의 관세·부가세 등을 포함한 것. 수입원가는 1천86원선인데 도매경락가격이 2천2백원으로 수입상이 1천1백14원의 마진을 보고 이어 각각 5백80원, 7백20원씩을 붙여 팔고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내과일생산농가에 대한 타격도 크다.
농림수산부는 아직 수입바나나의 급증으로 인한, 국내 과일 값 하락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으나 이는 지난해의 과일생산이 워낙 흉작이었던 때문으로 올 가을 사과·배 등이 본격 출하되면 바나나가 이들 과일과 경합, 과일 값 하락과 함께 생산농가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실제 일본의 경우 수입개방이후(65∼89년 기준) 자몽·오렌지 등 밀감류의 국민1인당 소비량은 16·3㎏으로 54%가 늘었으나 사과소비량은 8·8㎏으로 14㎏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수입이 개방됐다 해서 외국산 과일이 모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열대과일의 경우, 저장상 문제 때문에 대표적인 예로 파인애플은 필리핀 등지에서 수입돼 소매단계까지 20일 이상이 소요된다.
그 사이 신선도가 가고 허실되는 게 많아 따서 2∼3일이면 도매시장에 나오는 국내산과 경쟁이 안돼 수요개발을 위해 손해만 안보면 들여오겠다던 몇몇 업체들도 최근 수입을 중단한 상태에 있다.
또 키위는 제주 및 전남·경남일원에서 나는 국내산이 신선도나 상품성에서 뿐 아니라 낮은 생산비(㎏당 3백원선)로 가격에서도 ㎏당 도매가가 1천5백∼1천8백원선을 유지, 수입원가가 2천7백원선(50% 관세 등 포함)인 뉴질랜드·미국산을 크게 앞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고있다.
그렇다고 외국산 과일수입에 경계를 늦춰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파인애플·키위 등은 특수한 예고, 현재의 바나나 수입급증도 문제지만, 특히 오렌지 같은 경쟁력이 큰 과일이 수입 개방될 경우, 감귤농가는 물론 국내 과일생산 농가의 폐농 등 상당한 피해가 일어날 전망이다.
또 수입과일은 정부의 소비자물가 등 물가조사 대상품목에도 빠져있어 완전한 유통마진의 규제 등 가격관리의 허점이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수입과일에 대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안정성 문제와 과도한 유통마진 문제를 줄이고 확대되는 수입개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탕식의 수입풍토가 개선되고 책임 있는 업체들이 수입을 담당하도록 수입업계가 육성되는 일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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