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권리회복 나설 때"|비상시국 전국교수 대토론회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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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고 김귀정양 운구행렬이 창경궁앞길을 지나 성균관대로 향하던 11일 오후 5시30분, 바로 옆거리 기독교회관에서는 「대학생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현 시국을 진단하는 현실비판적 대학교수들의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대학위원회(위원장 박현서·한양대교수) 주최로 열린 「비상시국 전국교수 대토론회」는 우여곡절 끝에 열려 이름처럼 거창하지는 못했지만 현실비판적 지식인의 대표격인 교수들의 사회전반에 대한 분석·비판·성토의 자리로 열기는 뜨거웠다.
이날 모임은 「학생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뜨거웠던 5월 정국이 정 총리서리 사건이후 급속히 반전돼버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한 교수들」이 마련한 만큼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진보적 사회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맡아온 교수들의 시국 진단인 만큼 우리사회를 보는 진보적·비판적 시각을 대표하는 자리임에는 분명했다.
이날 대토론회는 정치·경제·법률·인권·통일·언론·사회운동·교육·환경 등 8개 분야별로 전공교수들이 주제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4시간 가량 활발하게 계속됐다.
정치분야 주제발표를 맡은 최장집 교수(고려대)는 최근상황을 「공안통치의 부활」로 규정하고 『92년 총선과 93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민주화운동의 대연합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우리의 정치사는 집권층의 지속적인 권력장악 욕구에서 비롯된 질곡과 파행의 역사』라며 『6공 정부 역시 차기집권과 권력누수방지를 위해 공안통치를 지속해왔다』고 주장했다. 강군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5월 정국 역시 이 같은 공안통치의 강경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최근 정 총리서리사건이후 다시 공안통치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또 5월 정국을 87년 6월 정국과 비교, 『중산층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진단. 최 교수는 『그러나 87년 민주화를 경험한 국민들은 공안통치가 장기화되는 것을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악법개폐와 인권문제」를 주제 발표한 한상범 교수(동국대)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방지 못한다」는 법안을 인용하면서 『인권을 침해하는 법 개폐를 위해 당사자인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6공이 약속한 개혁입법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전제한 뒤 『우리사회의 악법개폐와 인권상황 개선은 집권층의 「선처」를 기대할 단계를 이미 지났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악법을 개폐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저항권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와 관련, 『저항권이란 근대국가성립의 기초인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 인권선언에 명시된 기본권인데 유독 우리 나라에서는 저항권을 백안시 해왔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개폐해야할 악법으로 ▲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공안관계법 ▲집시법·언론관계법 등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있는 노동관계법 ▲국민의 정치참여를 배제하는 선거법 ▲사립학교법 등 교육관계법을 예거했다.
이광우 교수(전남대)는 통일정책과 관련된 주제발표에서 『6공의 통일정책 역시 본질적으로 3공·5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역대정권은 통일논의를 일방적으로 비밀리에 독점해 왔다』며 『이는 국민의 통일논의를 봉쇄하면서 관변 이론가에 의해 만들어진 통일정책을 정권안보 차원에서 이용하라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서 6공의 통일정책 역시 겉으로 드러난 변화에도 불구,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
한편 이 교수는 토론과정에서 『우리 나라에는 진정한 중산층이 없다』고 주장해 박수를 받았다. 이 교수는 『서구적 개념의 중산층은 시민혁명을 통해 스스로 권리를 획득한 사람들이며, 따라서 항상 권력을 비판·감시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우리사회의 중산층도 체념적·수동적 자세를 벗어나 권리의식을 회복해야 진짜 중산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교수·시민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9시30분까지 계속됐다. 참석자들은 토론회가 끝난 뒤「도덕정치 구현을 위한 우리의 결의」란 문안을 채택,『정부는 정 총리서리 사건을 계기로 시국을 경색시키기 보다 민주화 수습에 먼저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날 행사는 당초 여전도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회관측의 뒤늦은 장소사용 불허로 기독교회관에서 열렸고, 기독교회관에서도 강당사용이 허가되지 않아 강당 앞 복도에서 열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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