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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난 천재 아닌데 … 왜 아빠는 묻지도 않고 그 역할을 맡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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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토미를 위하여

곤살로 모우레 지음

송병선 옮김, 244쪽

85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요즘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연예인이라고 한다. 자신의 꿈일까, 부모의 꿈일까. 단순히 아이들만의 꿈이라면 연기학원에 어린이들이 북적이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열일곱 살 소녀 이레네는 피아노를 포기하고 바이올린을 잡았다. 이전까지 이레네는 피아노 천재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러나 자신에게 천재성이 없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실력은 부모님의 의지에 따라 피나는 연습을 해 얻은 결과일 뿐이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내게 천재의 역할만 주셨을 뿐이야. 내게 음악의 천재가 되고 싶은지 묻지도 않고 말이야."

평생 매달려온 피아노를 포기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감을 맛본다. 이레네는 부모님이 '좋은 음악'을 들으라고 사준 '공식' 오디오에는 보란듯 클래식 음악 CD를 걸어놓고, 이어폰을 끼고 팝.록 등을 몰래 들었다. 이레네식 반항이자 복수였다.

여름방학, 신경외과 의사인 아버지는 윌리엄스 증후군을 연구하기 위해 칸사레스로 가족을 데리고 간다. 윌리엄스 증후군을 앓으면 일상생활에서는 신발 끈도 제대로 못 매는 정신지체아처럼 행동하지만 음악적 천재성을 보인다. 아버지는 모차르트가 윌리엄스 증후군을 앓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칸사레스에 '환자'토미를 물색해둔 것이다. 그리고 딸에게 연구를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를 돕기는 싫었지만 음악적 호기심 때문에 이레네는 토미에게 조심스레 접근한다. 이레네가 허공을 향해 바이올린으로 한 음을 연주하자 한참 후, 저 멀리서 토미가 하모니카로 화답한다. 둘은 그렇게 음악으로 대화하며 서서히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된다. 이레네는 토미의 순수한 영혼과 음악을 접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산골에서 어머니랑 어렵게 사는 토미는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왕따를 당해 학교 교육도 포기했다. 그러나 모차르트 같은 음악적 천재였다. 하지만 이레네는 토미가 모차르트처럼 연주한 피아노곡 대신, 자신이 엉터리로 연주한 음악을 녹음해 아버지에게 건넨다. 아버지가 자신을 17년 동안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었듯, 토미도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고민에 빠진 이레네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말한다. "네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있어. 네 맘을 이해해." 이레네는 속으로 옛 노래를 흥얼거린다. '너는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라.'이레네는 고민 끝에 토미에게 진짜 녹음 테이프를 건네고,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부모님의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결정할 권리가 없듯, 이레네 역시 토미의 인생을 함부로 결정할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장래 희망란에 어떤 꿈을 적을까. 자신의 꿈일까, 부모의 꿈일까. 진짜 자신의 꿈이 무언지 찾지 못한 아이들, 못다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성취하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겠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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