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부른 집념의 기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정신지체 3급 장애인으론 처음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우진군(右)이 17일 경기도 분당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 이옥주씨의 지도를 받으며 클라리넷을 연습하고 있다. [사진=최정동 기자]

"엄마. 우진이 머리 깨끗."

경기도 분당 서현동의 임광아파트 502호, 클라리넷 레슨을 받던 김우진(17.서현중 3)군이 어머니 이옥주(46)씨에게 '신호'를 보냈다. 악기를 불기 어려운 부분이 나왔다는 뜻이다. 옆에서 대기하던 이씨는 곧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우진이 머리 깨끗해져라"라며 아이를 다독거린다.

정신지체 3급인 김군의 언어는 어린아이 수준이다. 레슨을 받는 동안에도 선생님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클라리넷에 손댄 지 2년 만에 7~8분 되는 곡을 외워 무대에 설 정도로 클라리넷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서현동에서는 '클라리넷 말아톤' 스토리로 통한다. 어머니 이씨의 눈물겨운 뒷바라지 덕분이다.

김군은 생후 40개월에 '환경에 의한 언어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김군을 검사한 병원은 초등학교 교사이던 이씨에게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자주 바뀌어 이상이 생겼다"고 통보했다. 1주일 간격으로 친할머니.외할머니.친구에게 아이를 번갈아 맡겼기 때문이다. 아이는 말을 전혀 배우지 못했고 자신의 머리를 바닥.벽에 찧는 자폐 증상도 보였다.

이씨는 "처음에는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아이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우진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줘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남편(51)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미술.컴퓨터 등을 가르쳤지만 아들은 좀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김군은 학교에서도 늘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이씨는 "하루는 초등학교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여자아이가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는데 주제가 우진이였다. 늘 혼자 다니고 놀림만 받는 덩치 큰 아이로 등장했다. 가슴이 저렸다"고 아픈 기억을 털어놨다.

아들을 위해 교사 생활도 접은 이씨는 김군이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던 해에 클라리넷을 가르쳤다. 이씨는 "'하면 얼마나 하랴'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군은 곧 남다른 흥미를 보였고 놀라운 집중력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2005년 서현중 축제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선 김군에게 전교생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따돌림받던 아들이 무대에 섰을 때 이씨는 객석에서 하염없이 울었다고 한다. 김군은 성남시장애인예술제.전국장애인예술제에서 잇따라 입상해 보건복지부 장관상도 탔다.

음악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다. 김군에게는 호흡 조절, 악보 보기, 암기 모두가 힘든 일이었다. 이씨는 "아이가 레슨 선생님을 발로 걷어차고 소리를 지르며 안 하겠다고 했던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이씨는 "우진이 힘들어서 그만두면 이제 아무것도 안 할거야"라며 아이의 용기를 북돋워줬다.

올 3월 김군은 계원예고에 정원 외 입학한다. 경기도교육청이 계원예고의 동의를 받고 김군을 배치했다. 교육청 특수교육과의 박상길 장학사는 "정신지체 장애인이 예술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해도 안 된다'는 마음으로 어떤 분야에도 도전하지 못하는 정신지체아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서현중 특수반에 같이 있던 아이들 몇 명은 김군을 보고 음악을 시작했다.

◆정신지체 3급=지능지수와 사회성숙지수를 검사해 평균값이 50~70 사이면 정신지체 3급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김우진군의 경우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언어 수준과 상황판단 능력을 갖고 있다. 일반인이 쓰는 용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집착하는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영화 '말아톤'의 배형진씨는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이다.

글=김호정 기자<wisehj@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