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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진상 규명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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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져 가는 일제하 정신대문제를 오늘에 재조명, 일반의 관심을 일깨우기 위한 「정신대문제 강연회 및 시화전」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주최로 2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정대협은 지난해 11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한국여성민우회 등 15개 단체가 모여 정식 결성된 이래 각종 강연회 개최, 정신대 생존자를 위한 모금활동 등을 펼치는 한편 한일 양 정부에 수 차례 공개항의서한을 보내 이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 사후조처를 요구해 왔었다.
서울에선 처음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 윤정옥 정대협 공동대표(총3명)는 주제강연을 통해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이 땅의 10만∼20만명에 달하는 젊은 여성들을 종군위안부로 끌고가 성과 인권을 짓밟은 역사적 죄과를 뉘우치기는 커녕 진상규명과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우리들에게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해왔다』며 『이제 이 같은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힘을 모아 함께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일본 오키나와·홋카이도를 비롯, 태국 등 동남아 일대를 직접 탐방, 정신대 문제의 실상을 파헤치는데 노력해온 윤 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그간의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지금껏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해 관심을 모았다.
태평양 파라오섬 전투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군복을 입고 미군과 싸우는 총알받이로 이용됐다든가, 매춘에 응하지 않은 조선 여자들에게는 히로뽕을 투여했다는 등 사뭇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 윤 대표는 『그러나 일본의 종군위안부정책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점은 패전 후 위안부들에 대한 사후처리문제』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많은 자료들에 따르면 일본군은 패전 시 도주할 때 일본인 위안부들에겐 이 사실을 알려 함께 도주했으나 조선 위안부들은 현지에 그냥 버려두거나 미군의 공습을 피한다는 등의 구실로 굴·참호 등에 가둔 뒤 폭파·사살시키고 떠났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강연회에는 일본인 여성사학자 스즈키 유우코(영목유자·41)씨가 강사로 등장,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일본 와세다대·명치대 등에서 여성사를 강의하고 있는 스즈키씨는 지난 82년부터 일본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해오다 이들 종군위안부의 대다수가 조선인이었다는 점을 우연히 알게된 뒤 정신대문제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정대협의 초청으로 내한한 스즈키씨는 이날 「종군위안부문제와 일본여성」이라는 강연을 통해 『일본군에게 성적 착취를 당했다는 점에선 일본과 조선인위안부가 같은 선상에 있으나 조선인 위안부는 이와 더불어 민족적 착취를 당한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여성들이 서로의 입장에서 솔직한 대화를 나둬 이해의 폭을 넓히는 한편 일본정부가 하루빨리 이 명백한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속죄토록 하는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또한 일본 역사교과서에 정신대문제를 명기할 것 등을 요구하는 「일본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채택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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