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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연구가 이우형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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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30년 동안 우리의 강과 산을 누비며 30여종의 지도를 창작해 온 지리연구가 이우형씨(57·지도전문 출판사 광우당 대표)는 현대의 김정호로 불린다. 국내의 웬만한 강산은 발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을 누벼온 지도제작의 열정이 그러하고, 특히 그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연구에 남다른 집착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85년 대동여지도의 복원에 성공했고 지난해엔 이 지도의 축소판과 함께 해설서 『대동여지도의 독도』를 펴내 지리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산맥이름이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소등문차낭)가 1903년에 낸 「조선의 산악」이란 논문에서 작명, 사용되기 시작한 것임을 이 해설서에서 밝힌 것은 학계에서도 검토할만한 연구로 꼽히고 있다.
고토의 산맥명 사용과 분류는 조선의 지하자원 수탈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지하의 지질구조선을 표시한 것이나 일제하의 교과서를 거쳐 오늘날의 교과서에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차령산맥이 설악산에서 시작되어 남한강을 여러 번 넘나들며 금강을 건너 논산에 이른다고 표기되어 있는 등 실제의 생활권과도, 지상의 지세와도 맞지 않는다는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대동여지도의 선표시와 우리의 산줄기를 정리한 산경표를 분석, 우리 옛 지도의 산줄기 선은 높은 산 중심이 아니라 물줄기가 양쪽으로 나뉘는 분수령을 이은 것이고 이 산줄기들로 큰 강 유역의 생활문화권이 그대로 구분 지어지는 것임을 밝혀냈다.
산경표에 나타난 산줄기는 하나의 대간과 정간,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분류되며 우리 국토는 이 15개의 산줄기로 둘러싸인 각각의 강유역권, 즉 생활문화권으로 나뉜다.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져 국토의 모든 물줄기를 동류와 서류로 갈라놓는 산줄기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김포평야의 해발 1백m도 안되는 산줄기가 대동여지도에 뚜렷이 표시되고 있는 것은 이 산줄기가 한강유역과 서해안의 분수령이 된다는 사실 때문임을 그는 실제 답사를 통해 밝혀냈다.
그는 『지도학 박사라는 어느 미국인 학자로부터 산줄기와 물줄기로 국토전체를 표현한 지도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보지 못한 독특한 표현이라고 감탄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다』면서 『큰강 유역의 생활권역을 나누는 산줄기 분류는 가장 실용적인 지도표시법이며 앞으로 현대지도에서도 응용·제작해야할 조상들의 지혜』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외에도 조선조의 10리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4㎞가 아니라 5·4㎞임을 밝혀냈고 지명에서도 조령은 사잇길을 뜻하는 새재를 한문으로 표시한 보통명사이며 섬이름에 자주 나오는 모노란 용어는 뱃길이 우회(모로 돌아간다)하는 곳을 뜻하는 것임을 구명했다.
그는 『대동여지도는 한마디로 당시 조선조의 지리·역사·행정·언어·풍속·교통 등의 집약체』라며 『대동여지도는 한 개인의 연구대상이 아니라 각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 연구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가 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8세 때인 62년 함께 설악산을 오르던 친구가 일본제 등산수첩을 쓰고있는 것을 본 다음부터다. 성균관대 정외과 2학년 때에 기독교 방송국 성우 1기로 합격, 7년째 성우생활을 하며 등산취미를 갖고있던 그는 이때 우리의 등산지도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5년간의 답사와 작업 끝에 전국 20곳의 명산을 소개하는 등산수첩을 펴낸 것이 최초의 지도제작이다.
그 뒤 그는 성우생활을 계속하면서 69년엔 등산코스집을, 78년엔 정확하고 간결한 것으로 지금도 이름난 제주도 관광지도를 완성, 간행했고 이어 문화재의 분포를 중심한 경주관광지도를 만들었는가 하면 설악산·한라산·지리산 등의 본격 등산지도를 속속 내놓았다.
79년에 출판사를 인수한 그는 80년에 제주 관광총도와 경주관광총도를 펴냈고 84년엔 20여년간 축적한 자료를 활용, 전국의 유명산 1백70곳의 지도와 등산코스, 숙박시설을 담은 「산으로 가는 길」을 내놓았다.
이 책은 지금까지 5판을 기록하는 등 등산인들의 호평을 받고있다.
86년 이후엔 중·고교 지리부도를 만드는데 참여했고 국립공원 관리공단 주문으로 4개 국립공원 안내팸플릿을 만들기도 했다. 사업상의 일 틈틈이 대동여지도복원작업과 연구를 10년간 해온 그는 지난해에 대동여지도의 3분의2 축소판(대동여지도 본래 크기는 길이만 6m60㎝다)을 3백부 한정 인쇄로 찍어냈다.
올해엔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의 주문으로 김정호가 만들었던 똑같은 양식과 크기의 대동여지도 2백질을 4개월여의 작업 끝에 완성했다. 그는 이 작업은 자신이 기획, 조사, 도판, 편집, 인쇄까지 도맡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지론은 문화재지도, 민속지도, 여행지도 등 주제별 창작지도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지리원이 항공사진을 기초로 만든 지도는 국가기본도가 되며 이를 기초로 주제에 따른 각종 정보를 탐아 만드는 것이 주제별 참작지도가 된다는 설명이다.
『창작지도는 제작기간이 길어서 상당기간의 투자가 필요한데다 저작권도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하지만 필요한데 안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지도제작자로서의 그의 불만은 군사비밀을 이유로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도처에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고 군작전 지역인데 하나도 지도에 표시할 수가 없으니 지도만 보고 가다가는 길이 막혀버리기가 십상이라는 것.
『미소의 지도제작용 인공위성이 지구 표면을 샅샅이 촬영해 그 사진을 상업적으로 팔고있어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게 된지 오래입니다.
일본의 출판사에서는 이들 사진을 이용한 한국지도를 이미 다수 내놓고 있는데 우리 국내에서만 규제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지요.』
그는 또 우리 나라의 모든 군사공항과 활주로 방향, 진입공로까지 모두 표시되어 있는 미공군 작전지도를 보여주며 『미국이나 일본의 일반서점에서 아무나 살 수 있는 지도이지만 국내에서는 공항도, 활주로도 표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도는 그 시대의 역사와 같은 것인데 사용편의나 역사기록의 측면에서도 「없어져야 할 규제」라는 것이 그의 이유 있는 주장이다.
그는 우리의 기층문화를 연구하는 모임인 민학회의 부회장. 지명연구자의 모임인 「땅이름 학회」의 임원을 맡고있어 한 달에 한 두번씩 회의와 답사에 참여하는 한편 민속지도·시장지도 등의 구상에 전념하고 있다.
부인 권정자씨(49)와 대학생인 두 딸 등 4식구가 서부 이촌동의 25평짜리 아파트에 살고있는 그는 『주말마다 답사를 떠나다 보니 처음에는 아내가 지도와 자기 중에서 하나만 택하라고 불평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잘 이해해주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글 조현욱 기자 사진 임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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