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신 못차렸나/광역의회 공천을 돈으로 거래하는 여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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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역의회 선거의 정당공천을 둘러싸고 여야 가릴 것 없이 불법·타락의 해괴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명색이 공당의 지도자와 국회의원들은 시정의 잡배나 다름없이 공천을 뒷거래하고 있고 불법을 포착한 검찰은 뒷짐만 지고 있다.
도대체 이래가지고는 30년 숙원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돈뿌리」 민주주의로 변질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힘겹게 이룩한 기초의회선거의 공명분위기가 광역의회에 와서 오로지 정당의 개입으로 초장부터 얼룩진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당지도자와 정당에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남·광주에서 관내후보 6명으로부터 2억5천만원을 받은 민자당의 유기준 의원은 본인이 탈당하고 6명의 후보를 출마포기케 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는 모양이다. 민자당쪽에서는 유의원이 받은 돈이 당공천후보 6명의 공동선거운동자금이며 개인구좌가 아닌 지구당 공용통장에 입금됐으므로 정상참작이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뒷골목 세계에서나 통할 수 있는 말도 안되는 논리다. 유의원의 행위는 검찰과 민자당 자체 조사에서 명백한 정치자금법 위반임이 확인됐었다.
그럼에도 수서 뇌물외유사건때는 그보다 적은 액수를 받은 국회의원까지 구속한 검찰이 유독 유의원에게만 소추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자당의 압력 때문인가,아니면 유사한 경우가 민자당의 전국지구당에 널리 해당되어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인가.
들리는 바에 따르면 공천의 금품거래는 민자당의 상당수 지역구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집권여당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추악상이 통제력을 잃은 거대 여당의 새로운 표상처럼 드러나고 있는 느낌이다.
공천타락상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공천자 명단이 발표되자 신민당에서는 탈당계를 제출한 의원이 있는가 하면 당지도부의 「검은 거래」을 노골적으로 폭로,성토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구당위원장에게 추천권을 주어 지역단위의 거래가 많았던 여당과는 달리 신민당에서는 지구당위원장들이 부적격자라고 판단한 사람을 중앙당이 돈받고 낙하산식으로 지명한 예가 많다고 한다. 그들의 표밭인 호남에서는 억대단위의 공천단가가 공공연히 소문나 있고 비교적 지지기반이 강하다는 서울의 몇몇 지구당에서도 그런 거래가 중앙당 차원에서 이루어진 증후가 보인다.
평소 비교적 김대중 총재를 따르던 서울의 젊은 초선의원들이 반발의 선봉에 나선 것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이처럼 불법공천거래가 성행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선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때문일 것이다. 이는 지역과 사당성을 특징으로 한 우리의 정당구조와 유력 정치지도자의 위세아래 핀 독버섯 현상이기도 하다.
여당공천을 받으면 관의 지원을 받아 선거운동에 유리하고,어느 지역에서는 누구 사람이라야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오만한 정치인의 우민관을 깰 사람은 궁극적으로 유권자들 밖에 없다. 이번만은 정당의 나쁜 행태를 유권자들이 나서서 혼을 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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