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밖서 보는 「한국시위」걱정/유재식 베를린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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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끊임없는 시위사태,달동네 사람들의 찌든 생활상,암울한 농촌실태,열악한 생산작업환경… 마치 쿠르드난민촌의 참혹상에 버금가는 장면들이다.
26일 낮 독일의 민간방송 드라이 자트TV가 방영한 1시간짜리 한국 특집프로그램 장면들이다.
『한­영혼이 피를 흘릴 때』라는 제목의 이 프로는 한이 한국인의 정서와 현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집중 조명한 탐방기사였다.
내용은 주로 우리의 어두운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참모습만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정적 의도가 다분히 배나온 제작앵글에 대해 불쾌감이 우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요즘 한국시위·소요사태가 거의 매일 독일 언론들에 보도되고 있다. 이같은 보도를 지켜보아야 하는 교포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한국인이란 사실만으로 시끄러운 집안구석이 노출된데 부끄럽고 괜스레 스스로 잘못을 저지른 듯 송구스러워 한다. 그리고 「옆 집에 난 불」을 입초상에 오르내리고 심지어 「그러면 그렇지」하는 태도로 은근히 불구경을 즐기는 것도 같은 야속한 생각에 부정국면 일변도의 언론들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불쾌하고 분해도 이들이 할 수 있는게 당장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고국의 지도자들,가진사람들이 지혜와 양보를 발휘해 어려운 때를 슬기롭게 극복해주기 바랄 뿐이다. 그리고 비록 소수이기는 해도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실추된 우리의 모습을 더이상 왜곡되지 않게 바로 잡는데 일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정도다.
해외거주 한국인들은 현지언론에 보도되는 고국소식으로 우울하고 참담한 심정에서 서로 만나기만 하면 인사가 『국내사정이 어떻게 돼가느냐』고 시작된다.
서울과 광주에서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계속된 베를린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 직원들의 골프모임에 대해 상사주재원들과 교민들이 사전에 「모양이 안좋다」고 지적한 것도 모두 고국상황을 걱정하고 이러한 사태를 다루는 현지언론으로 참담해진 심정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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