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 번번이 TV방영 불허|방송위 단순한 잣대로 일부장면 문제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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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좋은 영화들이 심의의 벽에 막혀 TV시청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방송위원회의 TV방영용 영화심의가 멜러물 뿐만 아니라 정치·환경·과학물의 작품에도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단순화된 평가로 잇따라 수작들을 방영불가 결정하고 있다.
방송위 영화심의위(위원장 호현찬)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작품성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욜』『아메리칸 그래피티』『실크우드』등에 대해 잇따라 방영불가 결정하거나 보류 조치했다.
또 작품 전체의 의도나 의미와는 상관없이 일부 장면등을 문제 삼아 프랑스 영화『영원한 수수께끼』와 미국TV영화『그날이후』등과 만화영화 시리즈『개구장이 스머프』에 이르기까지 방영불가를 결정했다.
84년 비평가들로부터 최고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로버트드 니로, 제임스 우즈 주연의『원스 어폰…』의 경우 영화심의위는『폭력범죄 장면이 많고 이를 삭제할 경우 원작을 변질시킬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방영불가 결정했다.
그러나『대부』『프리지가의 명예』등도 범죄·폭력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에도 방영토록 한 것에 비해 안일하고 일관성 없는 심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국내서도 환경문제 심각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핵공장주변 방사능 오염문제를 다루는『실크우드』등에 대해서도 환경을 해치는 경영진에 도전하는 노조활동등을 문제 삼아 두번이나 방영 보류했다.
『실크 우드』는『졸업』으로 유명한 마이클 니콜스 감독작품으로 83년 주연(메릴 스트립), 조연 (셰어), 각본, 편집상등 5개 부문이 오스카상후보에 오른 수작이다. 또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욜』도 독재를 반대하는 정치성 때문에 방영 보류시켜 MBC가 스스로 철회토록 하는가 하면 고교생들의 성장기 방황을 진지하게 그린『아메리칸 그래피티』도 청소년들의 정서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방영불가 결정했다. 대가 조지 루카스감독, 리처드 드레퓌스 주연의 이 영화도 전체적으로 볼 때 정서를 해친다기보다 성장 청소년들이 방황과 고뇌를 뛰어넘는 인생경험을 그린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임수술에 도전하는 의사의 의학적 도전을 그린『영원한 수수께끼』는『임신과 출산을 흥미위주로 다룬다』는 이유로 방영불가 됐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생명의 신비에 도전하는 다분히 실험적인 작품으로 결국 의사가 생명자체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깨닫는 진지한 주제가 매몰되고 말았다.
핵전쟁의 공포를 가상드라마로 엮어 미국TV에서 전대미문의 시청률을 기록했던『그날이후(The Day After)』를 방영 불가한 것은 전쟁과 핵무기의 위험을 지적하는 것은 간과한채 걸프전이 계속되고 있는 때 국민들에게 공포의식을 가중시킨다는 단견의 판단으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방송위 영화심의위의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안일한 판단이 잇따르고 있는데 에는 부분적인 장면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지적되고있다.
또 1달에 2백여편 영화를 심의하는 영화심의위가 사무처직원 3명과 함께 1주일에 4∼5시간 정도심의, 물리적으로 부분적인 모니터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구나 구태의연하고 막연한 심의기준에 의해 기계적인 장면 삭제도 자주 생기고있다. <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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