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씨 유서 자필이냐 대필이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분신자살 배후개입 중요단서/검찰/검찰명예­재야도덕성 “사활”걸려/업무일지 직접작성… 대필없다/전민련
8일 분신자살한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둘러싼 대필 조작여부에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선제공격 이후 계속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검찰은 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결과를 근거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27)를 유서작성자로 지목,발표했다.
관례상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을 확실히 밝히는 것은 용의자의 단계를 벗어나 「범인」이라고 단정했을 때라는 점을 감안하면 검찰은 강씨가 유서 작성자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만일 유서가 강씨의 필적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인권침해시비는 물론 검찰의 명예와 수사에 대한 공신력 전체가 걸려있는 민감한 사건이라는 부담을 검찰이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전민련측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강씨 자신도 19일 이후 잇단 기자회견을 갖고 유서 대필사실을 완전 부인하는 한편 검찰의 발표내용을 항목별로 반박·해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민련측은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위기감을 느낀듯 업무일지,김씨의 수첩등을 검찰에 제출하는등 유서가 김씨 자필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한편 검찰수사는 재야운동권 탄압이라고 역공을 시도,반전을 꾀하고 있다.
◇검찰수사=검찰이 강씨를 지목하는 근거는 두차례에 걸친 필적감정결과와 김씨의 여자친구 홍모양의 검찰에서의 진술내용 등이다.
검찰은 필적감정결과와 관련,『강씨의 자필진술조서는 서울지검 북부지청에 보관중인 수사기록에서 찾아낸 것으로 강씨가 직접 쓴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그러나 『강씨가 이 자필조서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자필서류를 갖고 오면 그것을 근거로 다시 필적감정을 할 수도 있다』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김씨의 여자친구 홍양이 강씨의 이번 사건 개입부분을 진술한 뒤 담당검사에게 『그많은 사람들중에 어떻게 유서의 글씨가 강기훈씨의 글씨라는 것을 알았느냐』고 되물어본 사실도 강씨의 혐의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김씨 분신자살뒤인 11일께 전민련 관계자 1명이 홍양이 보관중이던 김씨의 수첩을 받아가면서 『검찰에서 조사를 받더라도 수첩은 없었던 것으로 말하라』고 강요한 사실도 밝혀졌다며 『전민련이 김씨 분신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 왜 수첩을 숨기게 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검찰이 이처럼 강씨에 대한 조사에 집착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강씨가 단순히 김씨의 구술대로 유서를 「대필」해준게 아닐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스스로 유서를 쓸 수 있는 김씨대신 유서를 대필했다면 유서를 조작했을 수도 있고 김씨 분신자살의 「연출자」 정도로까지 깊숙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전민련측 반박=전민련이 검찰수사에 대한 반박을 위해 제시한 자료는 숨진 김씨의 전민련 수첩과 김씨의 글씨가 적힌 서류봉투·서류철표지,그리고 강씨가 쓴 편지사본 등 네가지.
전민련은 이 수첩이 김씨 가족과 국교·중학교동창생의 이름·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점을 들어 김씨의 것이 틀림없으며 필적이 유서와 동일한 점을 들어 대필설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강씨가 87년 옥중에서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사본의 필적은 김씨 유서와 명백히 다르다는 점을 보임으로써 대필설을 강력히 반박했다.
전민련은 김씨의 자필이라며 자신들이 수사기관에 제출한 전민련 업무일지의 필적이 강씨의 것으로 밝혀졌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
전민련 인권위원장 서준식씨(40)는 『업무일지는 사회국 실무자 2명 가운데 신참인 김씨가 도맡아 썼고 김씨가 작성하는 순간을 직접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자신이 김씨의 여자친구 홍양을 분신 이틀뒤인 10일 만나 메모지에 김기설이라는 이름과 전민련 사무실전화번호를 적어주는 등 유서조작사실을 은폐하려했다는 검찰측 주장에 대해서도 펄쩍 뛰고 있다.
그는 『10일 홍양의 요청으로 홍씨와 종로5가의 한 카페에서 만나 홍양이 「아무래도 내가 조사를 받을 것 같다」고 해 모든것을 사실대로 얘기하고 분위기가 위압적이라도 말을 번복하지 말고 의연히 대처하라고만 했을 뿐 메모지를 작성해 건네준 사실은 없다』며 『홍씨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심각한 착각을 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씨는 김씨 분신이후 북가좌동 자취방에서 유류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 대해서는 『자취방에서는 잠깐 잠만 잘 뿐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아무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이상언·이하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