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심대로 개헌 제안 거둬들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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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명백하다. 다음 정부로 넘기라는 것이다.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는 한결같다. 4년 연임제 개헌 자체에 대한 찬반은 팽팽하다. 그렇지만 연말 대통령 선거는 현행 헌법체제로 치르자는 의견이 세 배 정도 많다.

국민의 뜻이 분명히 드러난 이상 노 대통령이 선택해야 할 방안도 한 가지로 귀결된다. 여론을 따르는 것이다. 개헌의 방향에 대한 본인의 의견만 남기고 추진 의지는 차기 대통령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국민의 뜻이 아니라도 노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를 확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개헌안을 제출한다면 정국을 혼란시키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노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개헌안을 발의하는 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렇지만 헌법에 규정된 권한이라고 대통령이 마음대로 휘둘러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행사는 국리민복을 위한 것이어야지 정략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개헌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나라를 흔들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음으로써 레임덕을 피하려 한다느니, 정치구도를 흔들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느니 하는 추측이다. 심지어 개헌안이 좌절되는 걸 핑계로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나 나라를 뒤집어 놓으려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분명하지도 않은 추측들이 나오는 것부터가 문제다. 청와대 측의 해명대로 나라를 위한 마음에서 내놓은 제안이라면 이번 제안은 국민의 뜻대로 거둬들이기 바란다.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쏟아부을 여력이 있다면 국정을 관리하는 데 모아주기 바란다. 개헌안이 통과되건 말건 일단 대통령이 밀어붙이면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되지도 않을 일에 국론을 분열시켜 힘을 소진할 만큼 우리 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