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고 "제발 우리에게 맡겨 달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교육 당국의 외국어고(외고) 규제정책이 논란을 빚고 있다. 교육부는 외고의 입학 자격과 설립을 제한한 데 이어 학사운영의 문제점까지 들춰내며 '옥죄기'에 나서고 있다. 전국 29개 외고가 '어학 영재를 양성한다' 설립 취지와는 달리 입시기관으로 변질돼 사교육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외고들은 "우수 인재를 뽑아 잘 가르치려면 입시와 학사운영을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외고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교육부는 9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유재희(과천외고 교장) 외국어고협의회 회장 등 외고 회장단 4명과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교육부 황남택 학교정책실장은 "성적 부풀리기나 자연계 진학반을 운영하는 등 변칙운영 사례가 적발됐다"며 "학사를 규칙대로 운영하고 입시문제를 중학교 과정 내에서 출제해 달라"고 말했다. 전병철(경남외고 교장) 부회장은 "학교별로 상황이 다른데 모든 외고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은 유감"이라며 "교장단과 회의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잇따른 외고 옥죄기=교육부는 이날 "교육청별로 5명 내외의 상설 지도.점검반을 만들어 변칙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입시 문제 출제 과정에 중학교 교사 참여를 권장하고▶지역별 공동 출제▶구술.면접시험에 수학.과학 풀이 문제를 금지할 것을 주문했다. 서울시교육청도 이런 내용의 지침을 마련했다. 외고 입시를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6월 '외고는 실패한 정책'이라며 입학자격을 제한했다. 2010학년도부터 입학자격을 광역 시.도 거주지로 한정한 것이다. 또 올해는 외고 설립 때 교육부와의 사전협의를 의무화해 신설을 어렵게 만들었다.

◆학교에 맡겨 달라=서울의 한 외고 교장은 "학생들의 수요에 따라 유학반이나 자연계반을 개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교육부가 이런 실정을 감안해 학사 운영의 자율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외고 관계자는 "평준화 보완책으로 도입된 외고는 20여 년간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검증된 학교"라며 "교육부가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간섭에 나서는 것은 '규제완화'시대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진곤 교수는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외고들이 먼저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며 "교육과정이나 학사운영 등을 현실에 맞게 손질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영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