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다쳐 입원하게된 경위 쟁점/새 불씨… 노조위원장 투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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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교도소서 단식하다 자해행위/유가족/단식농성엔 불참 운동중 다쳐/법무부
서울구치소 수감중 상처를 입고 입원치료중 병원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채 발견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31)의 투신사건을 둘러싸고 전노협등 재야와 검찰 등 당국의 입장이 서로 달라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5월시국의 새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박씨의 죽음은 강군 치사사건이후 잇따랐던 대학가의 분신과는 달리 현직 노조위원장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향후 노동계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으로 보여 명확한 사인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전노협등 재야와 정부 당국의 설명이 가장 상충되는 부분은 박씨가 서울 구치소에서 머리를 다쳐 안양병원에 오게 된 경위.
전노협측은 박씨가 다른 재소자 70여명과 함께 강군사건이 터지자 1주일간 단식농성을 해왔으며 4일 오전 『노동운동 탄압하는 노정권 타도하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스스로 콘크리트담에 머리를 부딪쳐 상처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전노협측은 박씨가 교도소내에서 이러한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던중 교도관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병원으로 옮겨져 끝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4일은 「백골단 해체 전국 동시다발집회」가 있었던 날이며 단식농성투쟁중인 박씨가 구치소측의 주장대로 운동시간을 갖고 공놀이를 했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측은 최근 서울구치소내에서 시국관련 재소자들이 단식농성을 벌인 적은 있으나 박씨는 이 농성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박씨는 운동시간중 혼자 담벼락에 헝겊으로 만든 공을 튀겨 다시받는 놀이를 하던중 담벼락위 창살에 공이 낀 것을 보지 못한채 공을 받기 위해 돌진하다 부딪쳐 머리를 다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측은 단식농성중인 재소자들은 운동시간을 주지않고 있다고 밝히고 박씨가 단식농성중에 참여했다는 전노협측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며 가혹행위는 절대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박씨의 응급치료를 담당했던 안양병원 신경외과 이충선 과장은 박씨가 이마 봉합수술을 끝낸뒤 사고경위에 대해 『공놀이를 하다 공을 쫓아가던 끝에 다쳤다』고 말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박씨의 어머니 김정자씨(55)는 『미결수인 아들이 법적인 문제를 고려,외부에는 공놀이중 다쳤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정권의부당성을 폭로하기 위해 자해행위를 했다고 고백했다』며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펴고있다.
이에 따라 ▲구치소내 박씨의 단식농성 참가여부 ▲상처를 입게 된 경위에 대한 명확한 검증이 의혹해소의 1차적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검찰과 경찰은 박씨의 투신동기에 대해 당초 ▲투쟁방법으로서의 자살 ▲도주중 실족사 ▲머리부상에 따른 정신이상에 의한 우발적 투신 ▲타살 등 네갈래의 수사를 펴고 있다. 그러나 박씨가 병실문을 나설 무렵 교도관 2명이 모두 휴게실과 소파 등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7층 옥상 난간높이가 80㎝나 되기 때문에 박씨가 도주를 위해 정문을 통하지 않고 굳이 옥상으로 올라갔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박씨의 치료를 맡았던 의사 이씨에 따르면 박씨의 상태가 정신분열을 일으킬만큼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작증세에 따른 우발적 투신 가능성도 거의 없는 실정.
박씨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는 박씨가 중환자실 문을 나서는 장면을 지켜본 옆자리 입원환자의 보호자 안종석씨(76)뿐이다.
안씨는 『오전 4시30분쯤 박씨가 자신을 3∼4차례 쳐다본뒤 밖으로 슬며시 나갔는데 잠시뒤 「아」하는 고함과 함께 「쿵」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결국 박씨의 투신을 둘러싸고 「의문에 싸인 죽음」임을 주장하는 재야측의 의혹과 정부당국의 「단순자살」 주장에 대한 이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도소내 상황의 정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부검 등을 통한 과학적 사인규명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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