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해외파병 무엇을 노리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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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질서가 모색되는 가운데 일본이 이 지역에서 정치·경제분야에 덧붙여 군사적으로도 한 몫 해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캄보디아 평화정착과 관련해 유엔군의 일부로 일본자위대 병력의 파견을 고려하겠다고 일본총리실 대변인이 밝힌 것이 그런 속셈을 가진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한다. 특히 이 발언이 나오게된 시점과 장소때문에 우리는 그 의중과 앞으로 이 지역에 미치게 될 영향을 저울질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주목되는 점은 지금까지 미국이 주도해온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역할을 일본이 적극적으로 물려받으려는 용의를 굳히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오랫동안 신중해 보이고 주저하는 듯 하던 중동지역의 소해정파견이 있은지 며칠 안돼 지상군의 파견용의를 스스로 발설한 것은 관성에 따라 가속도라도 붙은 느낌이다.
이는 앞으로 일본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기정사실화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주변국가에 주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아시아지역의 호혜적인 공동번영을 위해 가이후(해부준수)총리가 아세안국가들을 순방하는 가운데 수행관리의 입을 통해 공론화 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지역이 한때 「일본제국」의 억압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며 감정적인 반작용을 고려하지 않았을리는 없을 것이다.
이 지역국가를 비롯,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일본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일본의 역할은 공동번영을 위한 정치·경제적인 협력을 더욱 강화하자는데 있는것이지 군사적인데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냉전질서가 무너지고 이 지역에서 미소의 군사력이 퇴조하면서 힘의 공백이 생김에 따라 일본이 지역안정세력으로서 군사적 역할을 맡기를 미국이 종용해온 것은 사실이다.
힘의 공백은 어느 세력에 의해서든 메워지게 마련임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한 세력으로서 일본을 비롯,중국·인도등이 주목받고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보아 가장 주목받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 때문에 지난날 일본이 이 지역에서 거의 모든 나라에 끼쳤던 피해,그에 따른 감정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우려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예상되는 힘의 공백을 메워 지역안정을 보장할 대체세력의 등장이 불가피하다면 어느 특정국가가 주도세력이 아닌 다국간의 협력체제를 생각해야 된다.
물론 그러한 협력체제에 일본도 참여할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주도세력을 자임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군사력은 이 지역의 모든 국가와의 협의에 따라 과거 피해국들의 동의와 협조가 있을 때 검토되어야 할 일이다.
아직 아무도 그런 필요성을 거론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먼저 그런 발언을 한데 대해 우리는 깊은 우려와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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