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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경호실이 채홍사역 맡아|대취해 경호원이 업고 가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7면에서 계속>
궁정동 술좌석 4인 고정 멤버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 실장은『박 대통령은 궁정동에서 고독을 지우려 애썼다』며 이렇게 증언했다.
『아내란 건 뭔가 고향 같은 거 아닙니까. 푸근해서 쉬고 싶은 곳 말이에요. 거기다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더하잖아요.
박 대통령은 혼자 있어서 그런지 쓸쓸해 보일 때가 많았어요. 오후6시가 조금 지나면 박 대통령에게 퇴근 인사를 하러 집무실엘 들어가지요. 일과 후 별다른 스케줄이 없으면 박 대통령은「김 실장, 일 끝났으면 이제 퇴근하시죠」하세요.
그러면 나는「각하, 편히 쉬십시오」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죠. 방을 나오기 전 슬쩍 뒤돌아 보면 박 대통령은 창문 옆에 뒷짐을 지고 서서 물끄러미 뒤뜰을 내다보는 거예요. 그 모습이 그렇게 허전해 보일 수가 없어요. 가슴이 찡하지요.
「내가 있으면 나라도 말동무가 돼드릴텐데 내가 나가고 나면 누구하고 이야길 나누시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말동무가 그리워>
사실 박 대통령이 나를 비서실장 시킨 것도 외로워 그러신 것 같아요. 내가 주중 대사로 있다 들어온 게 78년 11월이었죠. 김재규 부장이 10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라고 해 들어온 것인데 한달 가까이 되도 박 대통령이 지역구는 커녕 전국구도 안주는 거예요. 화가 나서 술만 마시고 있는데 선거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밤 갑자기 박 대통령이 불렀어요.「날 원망했지」하면서「임자는 청와대에 들어와 나하고 같이 다녀」그러잖아요. 그래서 내가「각하, 저는 정치도 모르고 경제도 모르는데 비서실장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박 대통령은「정치는 당이 하고 경제는 경제팀한테 맡길테니 임자는 그저 나하고 다니기만 하면 돼. 내가 이미 김정렴 실장에게 다 이야기했어」하시는 거예요.』
박 대통령은 실제로 오랜 군 생활의 인연으로 정이 든 김 실장을 비서실장이라기 보다는 술친구이자 말동무로 여겼던 느낌이다. 특히 차 실장은 선천적으로 술을 입에 대지 못하고 김 부장은 간 경화로 술을 못 먹으니 대작 파트너는 김 실장 뿐 이었던 셈이다.
궁정동 회동에 대한 김 실장의 스케치.
『10·26당일 술 마셨던 안가 같은 곳이 궁정동 내에 서너군데 있었어요. 모두 정보부가 관리하는 곳이죠. 내가 비서실장 맡고 나서 처음 몇 차례는 다른 집에서 자주 마셨는데 나중엔 10·26 그 집에서 마시곤 했죠.
대개 만찬은 일과가 끝나는 오후6시쯤 시작해 8시나 8시반 이면 끝났어요.
술은 주로 시바스 리걸을 마셨는데 보통 두 병을 준비해 10·26 때처럼 한병반 정도를 비우죠. 내가 박 대통령보다 주량이 약간 셌어요. 박 대통령도 원래 말술이었는데 나이를 잡수시더니 술이 약해지더라고요.
박 대통령은 술을 주전자에 부어 물하고 얼음하고 섞어 드시는걸 즐겼는데 짬뽕하는 일은 김 부장이 잘한다고 항상 그를 시켰지요.
업무상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보는 사람들인데 이야기할게 뭐 그리 많을 리 있나요. 박 대통령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려고 정치같이 골 아픈 이야기는 피하려고 애썼죠. 또 나로선 내가 잘 모르는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소외되니까 적당히 다른 화젯거리를 찾았어요. 술 이야기도 하고 또 박 대통령은 자녀 이야기도 하고….
박 대통령은 지방 출장 갔었던 이야기를 아주 즐겼어요.「내가 어떤 노인네한테 술을 따라 주었더니 바짝 긴장해서 마시지도 못하고 손을 떨어 막걸리가 흘러내리더라」면서 재미있어 하곤 했죠.

<만찬 후 혼자 남아>
어쩌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차 실장과 김 부장이 꼭 한판 붙었어요. 차 실장은 김 부장더러「왜 좀더 세게 데모를 막지 못하느냐」고 다그치기 일쑤였죠.
그러면 김 부장은 잔뜩 골이나「세게 한다고 다 좋은 거냐」고 맞받아 치곤 했죠. 언쟁이 벌어지면 내가 끼어 들어 말리는데 그래도 안되면 박 대통령이「됐어, 그만들 해둬」라고 한마디하죠. 그리면 내가 재빨리 옆에 있는 여자에게「아가씨 노래 좀 해보지」라고 해 슬쩍 분위기를 바꾸곤 했죠. 10·26때도 세 번이나 화제를 바꾸려고 했는데 번번이 정치 이야기로 되돌아와 분위기가 험악해진 거예요.
이런저런 이야기로 박 대통령과 내가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 어느새 박 대통령은 얼큰해져서 조금씩 상체를 흔드시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대취한 적이 많지는 않지만 경호원이 업고 나간 경우도 간혹 있었어요.』
궁정동 이야기 중 세인의 귀를 쫑긋하게 하는 부분의 하나는 아마도 합석했던 여자들에 관한 비밀일 것이다. 김 실장은 김 부장·차 실장의 채홍에 대해 매우 못 마땅해 했다고 한다.
『대개 만찬이 끝나면 네 사람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박 대통령만 남겨 두고 우리 셋이 먼저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요. 술좌석이 적당히 되면 차 실장이「각하가 피곤하실 텐데 그만 쉬게 해 드립시다」라고 하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각하께 인사하고 나와요.
뭐 솔직히 박 대통령이 외롭고 적적하니까 부하들이 마음을 편히 해 드리려고 했겠지 만도 대체 대통령 주변에 여자들을 왜 그렇게 갖다 놓는지 모르겠어요. 한번은 시골에서 모심기 행사를 하는데도 박 대통령 가까이에 젊은 여자들이 어른거리기에 내가 나중에 농수산부 장관한테「왜 쓸데없이 여자들을 동원하느냐」고 호통친 일도 있지요.
박 대통령의 밤 행사는 10·26후 세인의 눈총을 많이 받았지만 측근들의 견해는 좀 다르다.
대통령 일상사를 챙기는 제1부속실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이광형씨는『대통령도 남자입니다.
맨날 본관 식당에서 막걸리만 잡수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장관이나 국회 의원들처럼 룸살롱·요정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옹호론을 폈다.
본관 막걸리 파티에서 걸직한 입담으로 박 대통령을 즐겁게 했던 박진환 전 특보의 회고.
『막걸리를 마시다 보면 가끔 어떠 어떠한 인사가 여자 문제로 말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했죠. 그때마다 박 대통령은「배꼽 아래의 일은 원래 시시하게 문제 삼는게 아냐」라며 화제를 돌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특보들도 웃으면서 그냥 넘어가곤 했어요.』
77년 환갑을 넘긴 박 대통령은 이 무렵 슬슬 나이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또한 몇몇 증언을 보면 그는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의 곱지 못한 시선에도 적잖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청와대의 측근 참모였던 L씨의 기억.
『박 대통령은 특히 혼자되고 난 후 부쩍 나이를 의식하는 것 같았어요. 낙엽 깔린 청와대 정원을 산책하다 이런 말씀을 한 적도 있어요.「나도 늙었나 봐, 가끔 옛날 일을 생각하면 도대체 그런 일을 어떻게 해냈나 싶어. 5·16도 그렇지만 64년인가 6·3사태 때 말이야. 그 큰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몰라. 지금 같아선 엄두도 못 낼 거야」라고요.
또 언젠가 새마을 운동을 보러 농촌에 내려갔을 때였죠. 기분 좋은 얼굴로 마을을 둘러보고 막걸리를 한잔하면서 조용히 이러시는 거예요.「어이, 내가 참 오래 하기도 했지. 벌써 몇 년이야. 하지만 날더러 독재자니 장기 집권이니 해도 할 때까지는 해야겠어. 우리 시골이 유럽의 독일 농촌처럼 그림 같은 마을이 될 때까지는 내가 좀 해야겠어」라고요. 시골을 잘살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말 뒤에는「혹시 내가 너무 오래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 같은 게 엿보였어요.』

<"이번이 마지막">
육인수 전 의원은『박 대통령은 유신2기가 끝나는 84년엔 물러나려고 한 것 같다』며 이런 증언을 남겼다.
『78년 12월 10대 국회 의원 선거를 앞두고 하루는 나를 부르시더군요. 가보니 국회 의원 공천을 주시면서 이런 말을 하세요.「이번이 마지막 인줄 알아. 나도 이번만 하고는 그만이야. 독재자라고들 하지만 배고픈 나라를 이 정도로 해 놓았으니 나도 외국 나가면 대접받을 수 있어. 육 의원도 그 동안 나 때문에 못한 일이 많을 텐데 84년 되면 나하고 같이 애들 데리고 외국 여행이나 다니자고」말이에요.』<김 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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