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돈 써야 … " 기원전 600년 관자의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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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관자
관중 지음, 김필수ㆍ고대혁ㆍ장승구ㆍ신창호 옮김
소나무, 1064쪽, 3만8000원

춘추 백가 중 관자(管子)만큼 비겁하게 살아남은 이도 드물다. 친구 포숙아와 동업하면서 이익금을 더 챙겼고, 세 번 전쟁에 나가 세 번 다 도망쳤다. 자신이 왕으로 밀던 이가 경쟁에 패해 죽게 됐으나 따라 죽지 않았다. 당시 기개를 목숨보다 소중히 했던 선비들과는 딴판이었다. 포숙아가 양보한다고 냉큼 재상 직을 맡기도 했다. 훗날 우정의 대명사로 관포지교(管鮑之交)란 미명을 얻었지만, 관자가 잘했다기보다는 오로지 넓디 넓은 포숙아의 아량 덕분이었다.

그러나 일단 재상이 되자 그는 확 달라졌다. 법을 정비하고 백성이 원하는 정치를 펼쳐 나라를 튼튼하게 했다. 이런 국력을 밑거름으로 자신을 등용해준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로 만들어 주었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해 건달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었다는 한신 못지 않다.

이 책은 그 관자가 썼다는 세상 다루기다. 관자는 철학자 사상가이기 이전에 경제학자요, 정치가였다. 공자.맹자가 이상과 말로 세상을 구하려 했다면 관자는 현실에서 해법을 구했다. 그는 "부유한 사람이 많이 소비하면 가난한 사람이 일자리를 얻게 된다"며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기본을 기원 전 600여 년부터 꿰고 있던 셈이다.

그는 또 무엇보다 인재를 중시했다. "일 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고, 십 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으며, 일생의 계획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다"(권수편)는 격언도 그가 처음 만들어냈다.

책은 관자의 저술로 돼있지만 사실은 그의 제자들이 덧대고 후학들이 끼워 넣은 것들이 대부분이란 게 정설이다. 길게는 후한 때까지 700여 년 간의 방대한 정치.경제.학술이 담겼다. 공맹은 물론 노자와 법가, 묵가까지 녹아있어 경세(經世)의 바이블로 불리는 것도 그래서다. 공자 맹자에 밀려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찬밥신세였다.

국내에서 완역되기는 처음이다. 1000쪽이 넘지만 각 편에 키워드를 적어놓아 원하는 곳을 찾아 읽을 수 있다. 공.맹에 이어 또 하나의 잠언록으로 삼을 만하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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