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창규의원자이야기

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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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 박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현존하는 공룡 화석 가운데 가장 많은 뼈를 회수한 '계룡이'가 계룡자연사박물관에 둥지를 틀었다. '계룡이'뿐만 아니라 학봉장군 미라와 세계에 단 4점밖에 없다는 동굴사자 화석, 상아 하나의 무게가 85kg에 이르는 매머드 화석, 무게 150kg의 운석 등 20여 만 점이 전시돼 있다. 이 유물들을 둘러볼 때마다 나는 고 이기석 박사의 큰 뜻에 고개를 숙이면서, 이 박사의 노력이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해준 원자력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원자력이 아니었다면 이 많은 유물이 '나이'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물의 가치는 어느 시기에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비로소 결정된다.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는 데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법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이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고 이용하는 것은 원자력 연구의 중요한 분야다.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 중에서도 탄소-14를 이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탄소-14 원소는 반감기가 5715년이다. 반감기란 방사성 동위원소의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살아있는 모든 동물이나 식물은 호흡과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는데 그 안에는 탄소-14와 탄소-12가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

그러나 동물이나 식물이 죽게 되면 그 순간부터 더 이상 탄소를 흡수하지 못하게 돼 이때부터 '탄소-14 시계'가 작동한다. 탄소-12는 방사능이 없기 때문에 일정량이 계속 남아있지만 탄소-14는 방사성 붕괴를 시작한다. 따라서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 탄소-12와 탄소-14의 비율을 측정하면 사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탄소를 이용한 연대측정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토리노의 성의'가 아닐까 한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님이 부활하기 직전 입었던 성의라 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물이다. 그런데 이 옷의 재질인 아마가 서기 1325년께 수확된 것으로 밝혀져 예수님 시신을 쌌던 천이 아니라 중세의 위조품임이 확인된 것이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주선한 것도 방사성 동위원소, 즉 원자력이다.

탄소-14의 반감기는 5715년으로 4만 년 이상의 유물을 측정하면 그 정확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또한 탄소를 흡입하지 않는 무생물의 연대측정에는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4만 년 이상 된 유물이나 무생물의 연대측정에는 포타슘이나 아르곤 등 반감기가 훨씬 긴 동위원소를 사용한다. 또 수십억 년이 된 지구 나이를 측정할 때는 우라늄-238을 사용한다. 우라늄-238의 반감기는 무려 44억6000만 년으로, 이를 이용해 측정한 지구의 나이는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약 45억 년이다.

이제 새해니 누구나 나이를 한 살씩 더 먹게 되었다. 어릴 때는 빨리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새 나이를 먹는 것이 별로 탐탁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몇 만 년 뒤나 몇 억 년 뒤에는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몇 년 뒤 혹은 몇 십 년 뒤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계룡자연사박물관에 들러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아보는 건 어떨까.

박창규 한국원자력연구소장

◆ 약력=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졸업. 미국 미시간대 원자력공학 박사. 한국원자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