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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다리 이름으로 남게 된 美 최장기 건설 노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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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지 워싱턴 브리지, 링컨 터널, 덜레스 공항, 레이건과 JFK 공항, 프랭클린 루스벨트 도로….

미국 내 교량.터널.타워.도로 등 기념비적인 건축물에는 흔히 대통령.장관 또는 그 지역이 낳은 유명한 인사들의 이름이 붙여진다.

하지만 지난 8일 준공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와 그 북쪽 발레조 지역을 잇는 대형 현수교(1천56m)에는 '알프레드 잠파'라는 낯선 이름이 붙여졌다.

알프레드 잠파는 1905년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카퀴네스 브리지(30년 준공).샌프랜시스코 골든게이트 브리지(금문교.37년).체사피크 베이 브리지(52년).매키낙 브리지(57년) 등 미국 주요 교량들의 건설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브루클린 브리지(1883년 준공)의 르블랑 부자(父子)처럼 뛰어난 설계자도 아니었고, 교량 건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도 아니었다. 그저 교량 높이 설치된 와이어에 매달려 볼트와 너트를 죄고, 아슬아슬한 상판 위에서 철판 작업을 했던 수많은 근로자 중 한명이었을 뿐이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26년부터 45년 동안 건설현장을 지킨 미국 역사상 최장기 교량건설 기능공이었다는 사실이다. 50년부터는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교량 건설 공사장에 나섰다. 66세로 은퇴한 이후에는 네명의 손자들까지 교량공사장으로 내몰았고(?), 2000년 95세를 일기로 숨졌다.

그는 또 금문교 첨탑 건설공사 도중 수백m 아래 다리 밑으로 떨어졌던 25명의 근로자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였다. 당시 추락으로 갈비뼈.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퇴원 후 다시 금문교 공사장을 찾기도 했다. 당시 기자들이 그에게 "겁이 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천당의 절반쯤 올라갔다가 절반쯤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디서도 날 안 받아주니 다리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은퇴 후인 87년 금문교 건설 50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았을 때 기자들로부터 "왜 평생 그 일만 했느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난 스무살 때 작은 정육점을 운영했을 정도로 이재에 밝았어요. 하지만 어느날 신문에서 맨해튼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철강 노동자 사진을 보고서 젊은 패기가 발동했어요. 미국의 역사는 철강의 역사입니다. 나는 거기에 내 인생을 바치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평소 "많은 동료가 목숨을 잃고 다치는 와중에서 제대로 보상도 못받고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보험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해왔다. 이런 그의 뜻을 현실에서 펼친 것은 아들 리처드. 리처드는 철강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해 노동조합 설립운동을 주도했고, 현재 세계철강노조 수석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준공된 교량이 잠파가 26년 처음 교량 건설에 참여했던 카퀴네스 브리지의 바로 옆에 새로 세워졌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이러한 점 때문에 주정부의 교량 이름 선정위원회는 '알프레드 잠파 메모리얼 브리지'라는 이름을 추천했고, 주 상원은 만장일치로 이 이름을 승인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브라이언 볼 교통건설국장은 "많은 사람이 흔히 대형 건축물에다 유명인의 이름을 붙여야 그것의 위용.장엄함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며 "하지만 이번 잠파 브리지를 통해서는 사람들이 교량을 만들기 위해 목숨과 피땀을 바친 이름 모를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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