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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외이사직 주고받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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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미국 일부 대기업체 회장들이 서로 상대 회사의 이사회 임원을 겸직하는 일종의 '사외이사 스와핑'을 벌여온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A사 회장이 B사의 이사를 맡고, B사의 회장이 A사의 이사가 되는 식이다.

대기업 감시단체인 '코포리트 라이브러리'는 미국 내 1천7백대 기업(매출액 기준)을 대상으로 이사 등재 현황을 조사한 결과, 뱅크원.찰스 슈왑.갭 등 44개사의 회장이 서로 이사직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10일 발표했다.

찰스 슈왑과 갭의 회장은 상대 회사의 이사를 맡고 있으며, 통신대기업인 SBC커뮤니케이션과 버드와이저 맥주를 생산하는 안호이저 부시, 전자대기업인 에머슨 일렉트로닉 등 3개사는 회장이 서로 나머지 2개사의 이사직을 함께 맡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미국 법률상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사회 임원을 상호 교환(Interlocking)할 경우, 서로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외부의 전문가를 통한 경영감시'라는 사외이사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내부정보를 이용한 부당 이득은 물론 경영 평가 및 임금.보너스 책정 등에서 서로 밀어주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99년 언론에 불거졌던 시티그룹의 샌디 웨일 회장과 AT&T의 마이클 암스트롱 회장간의 스캔들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웨일 회장은 e-메일로 자회사인 샐러먼 스미스바니의 한 애널리스트를 통해 AT&T의 기업평가 등급을 '매수추천'(Buy)으로 상향조정시켰고, 이 대가로 시티그룹은 AT&T로부터 4천5백만달러 규모의 휴대전화 사업부 주식판매 대행사업을 따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인디애나대 캐슬린 데일리 교수는 " 한 기업의 회장이라고 타사의 임원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또 타사의 회장을 자사의 임원으로 선임해 제3자 입장에서 평가를 받거나 풍부한 경영 노하우를 배운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 회사의 임원직을 주고받을 경우에는 상식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제가 된 찰스 슈왑과 갭의 대변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출발한 양사는 창업 당시부터 회장들끼리 서로 상대방 회사에 조언을 해주기로 한 약속에 따라 이사직을 주고받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USA투데이 등 미국 언론들은 이번 조사자료를 내세워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사에 대해서만큼은 이를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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