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 '굿바이 헤밍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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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 같은 고전들이 미국 공공도서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2일 보도했다. 서가의 자리만 차지할 뿐 아무도 빌려가거나 찾지 않기 때문이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도서관들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책을 빼버리기 위해 컴퓨터를 이용해 최근 2년간 대출 실적을 검색해 봤다. 조사 결과 고전을 포함한 수천 권의 소설과 인문과학 서적들이 서가만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작가인 헤밍웨이의 소설을 비롯해 하퍼 리의 퓰리처상 수상 소설 '앵무새 죽이기',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 그리고 헨리 애덤스의 '교육론' 같은 인문 도서가 여기에 포함됐다.

WP는 "도서관이 신간을 들여오기 위해 오래되고 인기 없는 책들을 치우는 일은 항상 있어온 일"이라면서도 "이번에 추려내는 작업은 과거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전했다. 공공도서관이 반스앤노블스나 보더스와 같은 대형 서점 체인들처럼 독자들의 취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페어팩스의 21개 도서관을 관장하는 샘 클레이 회장은 "많은 책이 꽂혀 있는 서가에서 한 권의 책만 읽힌다면 아까운 일"이라며 "사람들이 보지 않는 책은 가차없이 골라내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페어팩스 도서관이 앞장서 하는 이 일을 다른 도서관들도 곧 따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서관 책들이 외면받는 것은 인터넷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웬만한 책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중요한 내용 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슬리 버거 미국도서관협회 회장은 "과거 도서관들이 유익한 책을 중시한 반면 요즘 도서관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갖추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추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다이언 크레시 알링턴 카운티 도서관장은 "공공도서관은 주민들의 문화적 소양을 위해 양서를 구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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