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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상태의 우리 대중문화(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벌거벗은 외설과 잔인한 폭력을 담은 외국의 이른바 「하수도문화」가 본격화한 뉴미디어시대를 타고 안방 깊숙이 파고들면서 우리 생활 주변의 정서환경을 크게 해치고 있다. 또 비디오 카셋,케이블 TV,위성방송 등의 뉴미디어를 통해 앞으로 우리에게 밀려들 왜곡된 해외 대중문화는 그 양이 엄청나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말 현재 VTR(녹화재생기)보급 대수가 4백20만대를 넘어섰고 93년 케이블 TV방송,95년 직접위성방송의 뉴미디어시대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밖에 지난해의 미국영화 직배에 이어 내년부터 외국비디오 제작사의 국내 진출이 전면 허용된다.
우리는 여전히 건전한 대중문화의 빈곤속에서 대중문화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이같은 뉴미디어,국제화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일부에서는 80년대부터 시작된 뉴미디어시대가 곧 본격화되면 선진국 문화가 일방적으로 유입되는 문화식민주의 현상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우려까지 하고 있다.
물론 외국 비디오 제작사들이 들어와서 꼭 저질의 하수도문화를 담은 비디오 카셋만을 만든다거나 케이블 TV가 그러한 대중문화 프로그램들만을 방송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본격화한 뉴미디어시대를 메워줄 우리 나름의 건전한 대중 문화개발이 충분치 못하다는데 있다.
우리의 대중문화 빈곤 현실은 우선 비디오 카셋,만화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한햇동안 공론에 납본된 비디오 프로그램중 외국영화가 2천3백여편인데 비해 국산은 그의 8%에 불과한 1백82편 뿐이었다.
TV와 극장시대의 대중문화는 사전심의·단속 등을 통해 파급의 원천을 조절할 수 있었지만 뉴미디어시대에는 개별적인 구입을 통해 안방생활문화로 은밀히 파고드는 저질 대중문화를 규제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약삭빠른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해적출판과 지하제작을 단속만으로 뿌리뽑는다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다.
최근의 한국성폭력상담소 접수 상담중 「국교 여학생 성폭력」이 전체의 30%를 차지했고 그 중요 원인이 음란만화,비디오였다는 분석은 새삼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뉴미디어 확산이 문화식민주의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과 청소년들의 정서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과 학교가 철저한 지도를 통해 「심리적 금기」를 심어주고 건전대중문화를 육성하는 정부의 문화정책이 앞서야 한다.
우리는 외국의 저질대중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국산 대중문화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함으로써 충분한 선택의 폭을 갖게 하는게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당국의 확고한 정책의지와 대중문화 종사자들이 건전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여건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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