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성수기」란 말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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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극장가의 성수기·비수기 구분이 많이 퇴색했다.
영화계는 여름·겨울방학, 추석·설날을 낀 일정기간을 성수기로 꼽는다.
반면 신학기가 시작되는 3∼4월, 6월,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 등은 비수기로 간주한다.
청소년·대학생 층이 관객의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방학기간은 연중 최대 극장대목의 위치를 고수한다 하더라도 설날·추석 등에 기댄 대목분위기는 이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추석의 경우 여성영화『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가 기대 이하의 관객동원을 보인 것을 비롯, 많은 영화들이 쓴맛을 봤으며·올 설날에 걸린 영화들도 대체로 저조한 흥행실적을 올렸다.
상대적으로 비수기에 선보인 영화들이「의외의」히트를 쳐 비수기에 대한 통념을 무색케 했다.
지난해 한국영화사상 최다관객동원을 기록한『장군의 아들』이나 화제작『남부군』등이 6월초에 개봉됐었다.
또 전국적으로 4백만 명이 관람한『사랑과 영혼』, 서울지역에서 70만 명을 넘긴『다이하드 2』등 외화도 비수기라는 12월초 개봉돼 겨울 내내 상영되었다.
이처럼 극장가의 성·비수기 개념이 퇴색된 이유로는 ▲관람취향의 변화 ▲외화공급 과다▲시의성을 강조한 개봉 등이 꼽힌다.
설날·추석 등의 연휴를 노린 영화 개봉이 고배를 든 이유는 관객들의 관람취향이 바뀌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연휴를 즐기는 방법이 가족단위로 차량을 이용해 기동화 되었고, 또 영화관람 외의 다양한 레저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연휴가 오히려 관객들을 극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있다.
둘째로 외화수입 자유화 이후 폭증하는 외화를 수용할 극장수가 태부족인 것도 성·비수기 의미를 없애고 있다.
소극장체제가 뿌리를 덜 내린 아직은 서울시내 중심가 l0여개 개봉관들이 영화흥행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위력이 막강하다.
따라서 극장을 소유하지 못했거나 극장에 비해 힘이 약한 업자들은 성수기 등을 따질 겨를도 없이 극장 잡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과거 같으면 이른바 성수기에 걸릴만한 영화들이「비수기」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소재가 당시 사회현실과 시의적으로 맞아떨어지거나 각종 영화제 수상의 반사적 흥행요소를 기대하는 영화업자나 극장의 기대심리도 비수기 구분을 퇴색케 한다.
지난번 걸프전이 한창일 때 개봉된『살인가스』나『아파치』등의 외화가 그런 예이고 최근 아카데미 수상작들이 무더기로 개봉된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4월은 연중 최대 비수기로 꼽히고 있지만 지난달 26일 발표된 아카데미상 수상작들로 극장가가 붐비고 있다.
예전엔 아카데미 수상작쯤 되면 성수기를 기다려 개봉하곤 했지만 외화가 폭주하는 요즘엔「식기 전에」이를 흥행과 연결시켜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극장가에는 작품·감독·각색·음악 등 아카데미 주요 7개 부문을 휩쓴『늑대와 춤을』을 비롯·여우주연상(미저리), 남우조연상(좋은 친구들), 여우조연상(사랑과 영혼)을 받은 작품 등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사랑의 기적』등이 걸려있다.
또 대종상 작품상을 방은『젊은 날의 초상』, 본선심사를 보이콧했던『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도 흥미로운 흥행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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