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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불 「영화전쟁」/불 배우 성비행 전력 미서 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오스카상 안주려는 음모” 발끈
걸프전으로 무르익은 미 불간 밀월관계가 한 프랑스 영화배우의 소년시절 추행시비를 둘러싼 양국 여론 사이의 감정대립으로 자칫 깨질지 모르는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2월초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프랑스 영화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9살때 처음으로 집단 강간에 참여했고,그 이후에도 강간을 다반사로 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해 양국 여론,특히 여성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드파르디유는 국제영화계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최고의 인기배우로 지난해 그가 출연한 고전코미디영화 『시라노 드 베르즈락』은 프랑스 영화로서 근래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둬 지난해말 칸영화제와 프랑스의 대종상격인 세자르상을 휩쓸었고,금년도 오스카상에도 남우주연상등 5개 부문에 걸쳐 후보작으로 올라가 있었다.
타임지 보도에 가장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미국의 여성단체들로 세계 최강의 여권단체로 알려져 있는 전국여성기구(NOW)는 드파르디유가 출연한 영화를 보이콧하고,그의 출연작이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그에 대한 공개사과와 과거의 악행을 참회하는 뜻에서 강간피해여성들을 위한 거액의 기부금 출연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놀란 드파르디유는 『어렸을때 성경험을 했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게 결코 강간은 아니었다』고 해명하면서 타임지에 정정보도를 요구하고,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강력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최근들어 워싱턴포스트지,유에스에이 투데이지 같은 미국의 일간지들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그의 소년시절 추행을 문제삼고 나옴으로써 오히려 일파만파로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언론의 그에 대한 공격에 대해 프랑스의 여론은 미국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의 추행보도의 사실여부를 떠나 이걸 꼭 이 시점(오스카상시상식 직전)에 문제삼는 의도가 매우 불순하고 저질스럽다는 것이다.
엄청난 상업적 이해가 걸린 오스카상의 영예가 프랑스에 돌아가는 것을 막기위해 미국 영화계가 미국 언론과 짜고 만든 음모가 아니겠느냐고 프랑스 사람들은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25일 거행된 제63회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결국 드파르디유가 주연한 『시라노』는 5개 후보부문 가운데 의상상 하나만을 건지는데 만족해야 했다.
반면 미국 영화 『늑대와 춤을』은 작품상등 7개 부문을 휩쓸었다. 오스카상 자체가 결국 미국의 저급한 문화제국주의의 상징이라는게 이를 보는 프랑스 여론의 시각이다.
중동문제에 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걸프전쟁 기간중 프랑스는 완벽하게 미국편을 들어 전쟁이후 양국 관계는 이전에 비해 크게 가까워진 것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서로의 마음 깊은곳에 감추어진 앙금의 깊이가 어떤 것인지를 이번 드파르디유 파문이 잘 말해주고 있다는 지적이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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