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빼어난 풍광…문학전통 "탄탄"|서산·당진 문학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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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있다.』
「청춘예찬」의 작가 민태원의 고향 서산.서산·태안, 그리고 당진을 안고 있는 태안반도는 중국 바람에 한창 설레고 있다.
갯바람과 산바람이 어울려 빚어내는 육쪽마늘·생강· 어리굴젓 등 맵고 아릿한 맛의 고향으로만 알려진 이 지역은 사실 중국산동반도와 가장 가까운 지리적 여건으로 대륙과의 문물교역창구로서 일찍부터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당나라를 오가는 나루라는「당진」이란 지명에서, 또 안면도의 패총을 비롯해 대산의 토광묘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마애불 등 태안반도에 널브러진 문화유적으로 하여 이 지역이 선사시대부터 한반도문화의 한 중심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리드미컬한 굴곡의 옅은 해안을 에 두르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와 섬의 풍요로움과 대륙문물의 유입이 이룬 태안반도 문화는 그러나 인천·부산 등 근대항구의 개항과 철도·도로 등 육운의 발달로 금세기들 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후미진 곳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의 북방교역에 부푼 서해안 개발로 태안반도는 아연 활기를 띠고있다. 백제이래 대륙교역의1번지였다가 사그라든 태안반도가 이제 다시 뜨겁게 회춘하고 있는 것이다.
초창기 우리의 현대문학을 일군 이 지역 문인으로서는 민태원·윤곤강 및 심훈을 들 수 있다.
청춘의 순수하고 고귀함을 격정적인 필치로 묘파, 노소불문 가슴을 설레게 하는 수필 「청춘예찬」으로 현대문체 개발에 기여한 민태원(1894∼1935)은 서산이 배출한 문인이자 언론인. 1920년 「페허」동인으로 참여하면서부터 소설·희곡·수필·평론과 번역 등 장르를 망라하면서 작품활동을 한 민태원은 『이른 아침 햇빛이 가야산을 넘을 때와 낙조의 붉은 빛이 도비산에 걸린 때에 천수만의 해파는 언제든지 정온하였다.
가까운 해면에는 은파가 반사하고 수평선상에는 고범쌍범이 드나들제 안면도의 푸른빛은 꿈속 같은 배경이 된다』고 수필 「추억과 희망」에서 제고향의 빼어난 풍광을 묘사하기도 했다.
『살어리 살어리 살어리랏다/그예 나의 고향에 돌아가/내 고향 흙에 묻히리랏다//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던 시절아!/바랄 것 없는 어두운 마음의 뒤안길에서/매캐하게 풍기는 매화꽃 향내/아으, 내 몸에 매진 시름 어찌 홀리랴』.
대지주 아들로 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도 가담했으나 후에 고려가요의 율조와 민족적 정서 탐구에 몰두했던 시인 윤곤강(1911∼1950)도 서산에서 태어나 위시대로 고향에 묻혔다. 『어쭙지 않은 사회봉사, 입에 발린 자기 희생, 그리고 어떠한 주의에 노예가 되기 전에 맨 먼저 너 자신을 응시하여라! 새로운 생활에 말뚝을 모래성 위에 꽂지 말고 질척질척한 진흙 속에다가 박아라. 떡메질을 해서 깊이깊이 박아라』며 흙의 작가 심훈(1901∼1936)이 내려와 대표작『상록수』를 완성시킨 곳도 당진. 서울에서 태어나 농민문학운동을 하던 심훈은 흙의 문학은 흙에서 나와야 한다며 당진으로와 「필경사」를 손수 짓고 집필활동을 하며 「상록학원」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벌여 당진을 상록수의 고향이 되게 했다.
민태원·윤곤강·심훈의 뒤를 이어 이근배·이생진씨 등의 시인과 남정현씨 등의 작가를 배출했으나 다 출향하고 이지역에 문단활동이 인 것은 60년대 후반. 67년 고창종 이내수 이원국 김동철 이인배 박기순 박범규 정택영 김경희 김윤철 김기호 유영대 지요하씨등 태안의 문학도들이 출범시킨 「여울문학동인회」와 강현서씨등 서산지역교사 7∼8명이 출범시킨 「황인부락동인회」가 이지역 문단의 모태다.
출범당시 동인지 『황인부락』과 『여울』을 펴내며 활동하던 이 동인들은 동인들의 출향과 전근 등으로 인하여 몇 년 못 버티고 해체돼 70년대 이 지역은 문단의 공백기를 맞는다. 80년대 들어 80년 당진의 「나루문학회」, 81년 서산의 「흙빛문학회」가 결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지역문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최주연 지요하 김영규 이원국씨등 서산지역 문학도14명이 모여 창립한 「흙빛문학회」는 83년 동인지 『흙빛문학』을 창간한 이래 현재 13집까지 내고 있다.
『흙빛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자연의 빛이며 우리고향의 빛이다. 모든 생명을 감싸주는 모성의 빛이며 인간본성의 빛이다. 더불어 그것은 정서의 빛이며 사랑과 평화의 빛이다』는 「흙빛문학」의 창간사에서 보듯 이 동인들은 향토 정서를 출발로 인간의 보편적 정서로 확산되는 순수문학을 추구하고있다. 연간으로 내던 동인지를 소도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86년부터 반년간으로 바꾼 「흙빛문학회」는 현재 회강 박만진씨 및 전장르를 망라해 동인 51명이 참여하고 있다.
출발과 도착, 유입과 포용, 그리고 유출이라는 「나루」의 뜻을 따 인수환 김영기 김규환 문무겸 홍윤됴 안승환씨 등 당진지역 문인들이 출범시킨 「나루문학회」는 80년부터 동인지를 펴내기 시작, 현재 11집까지 펴내고 있다.
시동인으로 시작한 「나루문학회」는 올 초 당진의 젊은 문학도들이 모인 「버그내문학회」와 「금랑문학회」를 통합, 흡수함으로써 종합문학회로 성장했다.
현재는 회장 문무겸씨외에 동인 32명이 참여하고있다.
「흙빛문학회」를 모체로 「서산문인협회」를 결성하려는 서산문인들은 서해안개발로 들끓으며 확산되고있는 서산시세에 따라 자칫하면 투기바람만 부는 날림도시로 떨어질지도 모를 이 지역 문화전통을 세우기 위해 꾸준히 향토 작고문인을 발굴, 문학전통을 확고히함과 아울러 시민들을 대상으로한 시낭송·시화전·문학강좌·창작교실등을 실시, 지역문학의 기반을 확산시킬 예정이다.
한편 시동인에서 당진문학을 대표하는 종합동인으로 성장한 「나루문학회」는 태안반도 지역문인들과의 유대를 위해 순회 시낭송·시화전을 개최함과 아울러 동인지도 종합문예지 형식으로 펴낼 예정이다. 【서산=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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