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평가,다툴 일 아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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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도권의 일산선 전철공사를 놓고 철도청이 공사착공 시점을 이유삼아 환경영향평가의 사전절차를 무시하려는 것은 본말전도의 행정편의주의가 아닐 수 없다.
환경처는 환경영향평가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철도청이 지난 15일 이 전철의 기공식을 갖고 공사를 시작한 것은 위법이므로 공사를 즉시 중단할 것을 교통부와 철도청에 정식 공문으로 요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철도청은 이에 대해 이 공사가 시작된 것은 새로 제정된 환경정책기본법이 발효되기 전인 작년 12월이었고 지난 15일의 기공식은 일종의 형식적인 행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사전 영향평가를 받을 법적인 대상이 아니라며 공사강행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처는 일산선 전철의 환경영향평가 서류가 지난 2월11일에 제출돼 현재 이 평가서류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협의중에 있으므로 이 평가작업이 끝난 이후로 공사는 연기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공포,발효된 환경정책기본법과 그 시행령은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협의절차가 끝나기 전에 공사를 시작한 경우에는 환경처가 공사의 중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철도청의 주장대로 실제적으로 이 공사가 시작됐다는 작년 12월의 시점에서 본다면 당시 환경기본법은 특정사업이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된다하더라도 이를 취소 또는 변경시킬 수 있는 강제력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철도청은 이 공사의 실제적인 착공시점이 새로운 환경정책기본법 발효이전이므로 이 법이 규정한 공사의 중단조항에 저촉받을 수 없다는 논리인 것 같다.
우리는 여기서 환경영향평가제도의 근본정신과 취지에 입각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공공건설이나 개발사업이 국가의 발전이나 주민편의의 증대를 위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공성이라는 대국적 의미의 우위적인 가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특정지역의 주민이나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심대하게 미칠 우려가 있을 때는 이 사업을 재조정하거나 보완작업이 부수돼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제도를 강화하는 국제적인 추세도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같은 공사를 추진하더라도 기왕이면 환경적인 피해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더욱이나 최근들어 환경문제에 대한 국민의 발언과 집단적인 의사표시가 강렬해지는 경향이다. 이들을 무시하고 강행할 때 빚어질 엄청난 부작용도 우리는 여러차례 경험한 바 있지 않는가. 공사가 상당히 진척된 다음에 비로소 문제점을 시정하려 들면 그만큼 시간적. 재정적 낭비와 손실도 커진다.
일산선 전철공사를 착공시점을 빌미삼아 환경영향평가 없이 어물쩍 강행하려는 자세는 옳지 않다. 철저한 환경영향 평가작업과 해당주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완벽한 법적절차를 거쳐 말썽없는 역사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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