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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수출 잘되는데 경제는 왜 어렵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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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어요. 수출이 이렇게 잘되는데 지금 우리 경제는 어렵다고들 난리입니다. 서민들은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울상입니다. 경제지표를 보면 서민들의 이런 하소연은 엄살이 아닌 것 같습니다. 수출은 4년 연속 10% 이상씩 늘고 있는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매년 3~5%대에 그쳤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도 잘 이해가 안 되죠.

과거 우리나라는 수출로 경제성장을 일궜습니다. 수출이 잘되면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지요. 또 임금이 많아져 내수가 살아났죠. 우리 국민이 우리나라 안에서 소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제 수출과 내수의 이런 연계성이 크게 약화됐습니다. 수출과 내수가 따로 논다는 것이죠. "옛날 같았으면 이 정도 수출이면 8~9%의 성장은 충분했을 것"이라고 하는 경제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봐도 그래요. 다소 어려운 이야기지만, 수출이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수출 증가분이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낳느냐를 따지는 것이지요. 1993년에는 수출 1원이 늘어나면 0.711원의 부가가치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2003년에는 0.582원으로 감소했습니다. 다시 말해 1000원어치를 수출하면 전 산업에 걸친 소득 창출액이 711원이었는데, 이것이 582원으로 줄었다는 것이죠. 이는 국민경제에 대한 수출의 기여도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출이 내수를 늘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예전보다 힘을 못 쓰고 있다는 뜻이지요. 가령 90년에는 수출이 10억원 늘어날 때마다 일자리는 46.3개 늘어났지만, 2000년에는 15.7개로 줄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수출과 내수의 연결 고리가 느슨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출 주력 산업의 구조가 달라졌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수출 주력 제품은 반도체.자동차.휴대전화.선박.석유화학제품입니다. 이 5대 주력 제품이 전체 수출의 42%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들 업종은 그렇게 사람을 많이 쓰는 산업들이 아닙니다. 대개 장치나 기계의 힘을 빌려 제품을 만들지요. 특히 외환위기 이후 정보기술(IT) 업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됐습니다. 어려운 말로 한다면 수출에 따른 고용 유발 효과가 약해진 것이죠. 수출이 내수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부품 및 소재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됩니다. 수출이 IT 등 첨단 제품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해 줄 부품과 소재를 국내에서 많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 수출 기업들은 부품을 해외에서 많이 들여옵니다.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같이 늘어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실제로 휴대전화의 부품 해외 의존도는 40%가 넘고, 컴퓨터는 70%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왜 우리나라 부품을 쓰지 않느냐"고 기업들을 일방적으로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해외시장에서 싸고 좋은 제품으로 승부를 하려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질 좋고 값싼 부품을 확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정부와 대기업들도 부품산업의 중요성을 알고 중소기업에 대해 여러 가지 지원을 하지만, 이는 당장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일입니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이 떨어진 것도 또 다른 원인입니다. 수출이 늘어나 생산량을 확대하면서도 투자에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외 상황이 급변해 주저하고 있는 거지요. 기업들이 인건비가 싼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것도 수출과 내수의 고리를 헐겁게 만들고 있지요. 이런 경제 구조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가 투자와 소비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면 더 많은 제품을 수출할 수 있겠죠. 이를 '선순환 경제구조'라고 말할 수 있지요. 선순환이란 악순환의 반대말로 일이 좋은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선순환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수출 호황-내수 부진'이라는 현재의 경제 문제를 풀려고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 즉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왜냐고요. 우리나라 근로자의 임금이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보다 훨씬 높아 그렇답니다. 그래서 수출 품목의 부품 및 중간 제품의 국산화에 힘쓰는 한편 일부 제품에 치우친 수출 품목을 다양화해야 우리 경제의 기반이 한층 튼튼해질 거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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