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나 저제나…속 터지는 9호선

중앙일보

입력


12일 오전11시 서울 강서구 가양동 탐라영재관 앞. 도로 한복판에 지하철 공사현장임을 알리는 각종 장비가 널려있다. 철판구조물로 상판을 깔아 새로 난 도로를 따라 차량들이 굉음을 내면서 달리지만 이리저리 뒤엉켜 도무지 제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다. 잦은 정체가 반복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지하철이 생긴다는 이유만으로 속내를 앓으면서도 그저 꾹 참고 있는 실정이다.

영재관 맞은 편 SK실버타운 건물은 정문에 '가양대교역 2번 출구 확정'이란 간판을 내걸고 호기롭게 교통편의를 자랑하며 입주자들을 손짓하고 있다. 하지만 탐라영재관 김귀현 관장은 "이미 4년여가 넘도록 공사가 진행중인데 도대체 언제 지하철 구경을 할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푸념했다.
지하철 9호선의 개통을 기다리는 주민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착공도 늦었지만 공사지연이 반복돼 도무지 개통시기를 종잡을 수 없다.

◆어떤 계획이었나=지하철 9호선은 김포공항에서 시작해 여의도를 거쳐 반포~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을 경유, 송파구 방이동까지 연결된다. 그동안 한강 이남지역 중 지하철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곳을 동서로 연결하는 총연장 38㎞ 노선이다.
김포공항에서 강남대로까지 25.5㎞ 1단계 구간이 현재 3조337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완공을 목표로 공사중이고, 나머지 구간은 2.3단계로 나눠 착공을 준비중이다. 2단계의 경우 2007년 착공, 2012년 완공이 목표다.
9호선은 개통후 운행할 지하철 색상을 금색으로 정했고, 지하철 노선 가운데 처음으로 전 역사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키로 하는 등 운용방안까지 구상해 놓고 있다.
특히 다른 지하철 노선과 달리 모든 역사에 멈추는 완행과 일부 역을 건너 뛰는 급행을 따로 운행할 예정이다. 일부 정거장만 세우는 급행을 이용하게 되면 인천신공항에서 강남까지 1시간 이내 진입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1974년 서울역~청량리역 구간 1호선 지하철이 개통된 후 30여년 만에 사실상 서울의 전지역 대중교통인구를 지하철이 흡수하는 시대를 맞게 된다.

◆지지부진한 공사, 언제까지=9호선은 당초 2001년 착공 예정이었지만 월드컵 때문에 1년 뒤인 2002년 착공됐다. 당초 1단계 구간의 완공연도는 내년 말이었다. 하지만 착공 이후 사유지 보상협상 부진, 정부지원예산 삭감으로 조금씩 공사가 늦어져 개통은 다시 2008년 말로 미뤄졌다.
그러나 이 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내년 공사에 필요한 예산확보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지하철건설본부가 내년 건설비용으로 국비 3166억원을 요청했으나 건교부가 이를 1965억원으로 삭감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는 지난달 초 건교부가 삭감한 국고지원분을 1418억원으로 또 낮췄다.
지하철 9호선 건설비용은 국고 40%, 시비·민자 60%로 충당된다. 국비지원이 줄어들면 공기(工期)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1단계 구간의 현 공정률도 58%에 불과하다.
또 공사현장에서도 장마철 침수와 주민민원 등의 이유로 공기가 6개월씩 지연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9호선 공사를 맡고 있는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6개월씩 공사지연이 대부분 공구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이 마당에 예산마저 충분치 않다면 공기를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말했다.
1단계 공사가 지연되면 2, 3단계 구간 사업도 연쇄 차질이 불가피하다. 서울시는 2007년 착공예정인 2단계 구간(교보타워 사거리~잠실종합운동장)에 이어 3단계 구간(종합운동장~방이동) 8㎞는 시의 재정여건을 감안, 건설할 계획이다. 1단계부터 예산조달에 허덕이는 마당에 3단계까지 순조로이 사업이 진행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서울지하철건설본부 하종현 팀장은 "1단계 구간 공사를 2008년 말까지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사업비가 없어 공사가 지연되다보니 현실적으로 공사현장은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대만큼 실망도 커=제주지역 대학생들을 위해 제주도가 세운 기숙사인 강서구 가양동 탐라영재관은 2001년 3월 문을 열었다. 300여명의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는 이 기숙사는 무엇보다 지하철 9호선 개통이 예정돼 지금의 위치로 터 잡았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이 기숙사 학생들의 불편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서울지역 각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당산역까지 30여분 걸려 버스를 타고 간 뒤 다시 2호선 지하철로 갈아 탄다. 등·하교 시간이 1~2시간은 보통이지만 불편을 감내할 수 밖에 없다.
탐라영재관에 입주한 고은별(21·여·이화여대 경영학과 3년)씨는 "통학불편이 사라지리란 생각에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며 "이대로라면 대학을 마치기 전 지하철 구경은 물 건너간 것 같다"고 꼬집었다.

지역발전을 기대했던 지역인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잠실이 지역구인 송파3선거구 출신 진두생(55) 서울시의회 의원은 "재건축단지가 들어서는 61만 송파구의 최우선 과제는 교통"이라며 "지하철 9호선의 조기개통만이 교통혼잡을 줄일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김도현 강서구청장은 "공항을 낀 서울의 관문인 강서구는 물론 강남·송파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지하철 9호선의 조기완공은 필수적"이라며 "서울시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