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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학교 안 보내며 시위… 서천 주민들 "17년 미룬 장항산업단지 착공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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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8일 충남 서천군 장항읍의 장항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 학급생 35명 가운데 10여 명만 등교해 썰렁한 모습이다. 주민들은 장항산업단지의 연내 착공을 요구하며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17년 전 지정된 국가산업단지를 즉각 착공하라."

18일 오전 9시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 이 학급 학생 35명 가운데 겨우 10명만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이 학교 전교생 476명 가운데 이날 등교한 학생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장항중앙초(660명).마동초교(80명) 등 3개 학교 학부모들도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19일부터 인근 송림초교(70명)까지 등교거부에 가세한다. 장항읍과 전북 군산시를 연결하는 금강 하구둑에는 농민들이 트랙터 30여 대를 동원해 시위를 하고 있다. 주민 2000여 명은 14일 두 시간 동안 금강하구둑을 막기도 했다.

충남 서천군 주민들이 지역 최대 현안인 장항산업단지의 연내 착공을 요구하며 연일 시위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 갈수록 거세지는 주민 반발='장항산단 대정부투쟁 비상대책위원회' 김경제 위원장은 "조만간 서해안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며 "전국 대부분의 산업단지 조성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데 유독 장항산단만 17년째 미루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소열 서천군수는 11월 29일부터 서울 세종로 정부 종합청사 후문에서 텐트를 치고 12월 8일까지 11일간 혼자 단식 농성을 한 데 이어 서천군 의원들도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11일엔 대전.충남.충북 3개 시.도지사가 긴급회동 후 정부에 조기착공을 촉구하기도 했다.

◆ 환경단체 반대로 사업 제동=건설교통부는 1989년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 지역 바다를 매립해 산업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군산지구(482만 평)는 공단지정 뒤 곧바로 착공에 들어가 이달 말 준공식을 한다. 공단 분양률도 30%를 넘었다.

반면 장항지구는 사업추진이 계속 지연됐다. 정부가 예산 부족, 공단 조성 뒤 분양 전망 불투명 등을 이유로 산업단지 배후 도시규모가 장항보다 큰 군산공단을 먼저 개발한 뒤 장항공단을 착공키로 했기 때문이다.

장항공단은 공단 지정 5년이 지난 94년 어업권 보상이 시작됐고, 99년에야 산업단지 진입로 3개 가운데 한 개가 완공됐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는 갯벌 매립에 필요한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환경단체의 반발로 사업 추진에 다시 제동이 걸렸다. 서천환경운동연합 여길욱(45) 사무국장은 "장항 갯벌에는 검은머리물떼새.검은머리갈매기.저어새.넙적부리도요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 조류가 서식한다"며 "환경 재앙을 막으려면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천군은 금강하구둑을 막은 뒤 해류 변화로 토사가 쌓이면서 장항지구는 이미 죽은 갯벌이 돼 보전가치가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해양수산부가 한국해양연구원에 의뢰해 99~2004년 6년간 전국 갯벌 69곳에 대한 생태조사 결과에서도 장항갯벌은 보전 순위에서 최하위권인 61위로 나타났다. 서천군 한덕수 기업유치담당은 "철새는 대부분 장항에서 10km 이상 떨어진 금강하구둑 상류나 유부도에 산다"며 "생태보전을 위해 유부도 일대 1000만 평을 야생동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대안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나 군수는 "장항산업단지는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국무조정실 김형석 농수산건설심의관은 "환경단체 반발 등으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며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해법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서천=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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