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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시트콤서 영화로 … 다시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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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올드 미스 다이어리' (21일 개봉.이하 올미다)는 모처럼 제대로 웃겨주는 영화다. 강도 높은 웃음으로 매니어 시청자를 거느렸던 시트콤을 스크린에 옮겼으니 당연한 결과일까? 아니다. 기획·제작 단계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던 충무로의 싸늘한 시선과 대비하면 기대 이상의 수작이다.

◆스크린에서 업그레이드된 웃음=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인공은 서른을 넘겼지만 백수나 다름없는 미혼 여성. 세 여자가 중심이었던 시트콤과 달리 영화는 그중 미자(예지원)에게 힘을 모았다. 성우인 미자는 한동안 일감이 끊겼다가 공포물의 귀신 소리를 간신히 맡게 된다. 안 그래도 방송사 PD들 앞에 꼼짝 못하는 신세인데, 그 사이 바람둥이 박PD한테 울며불며 사랑을 구걸했다는 오해를 받아 더욱 비참해진 상황이다. 미자는 자신보다 어리면서도 속칭 '싸가지 없다'고 여겼던 지 PD(지현우)가 그런 박 PD에게 '싸가지 없게' 맞서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현실보다 오해와 공상이 늘 앞서가는 미자의 성격을 따라 영화는 초반부터 특수효과까지 동원한 상상 장면을 곧잘 등장시킨다. 그야말로 만화적인 상상력인데, 이런 표현이 영화적 재미와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것도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할 요소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맛보기로 등장한 예지원의 코미디 기질은 이 상업영화에서 한결 증폭돼 유감 없이 발휘된다. 하이힐을 신고 망가지든, 눈물.콧물에 뒤범벅이 되든, 속칭 '오버 연기'를 하면서도 미자를 관객이 마음 줄 만한 캐릭터로 만들어낸 점은 예지원을 칭찬할 대목이다.

◆웃음 뒤에는 페이소스=영화판 '올미다'엔 사랑이 청춘의 전유물은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또 하나의 로맨스가 등장한다. 저마다 홀로인 채 미자와 한집에 사는 할머니 세 자매(김영옥.서승현.김혜옥)의 경우다. 나이가 들었다고 온전히 철이 드는 것도, 생의 욕망이 사그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는 성격들이다. 그중 둘째(서승현)가 늘그막에 뒤늦게 동네 표구점 영감님에게 눈독을 들인다. 이를 돕는 자매들의 좌충우돌 활약이 미자의 연애담과 나란히 진행되면서 독특한 재미를 낳는다. 특히 외모는 노인네지만 입에서는 근력이 넘치는 첫째 할머니(김영옥)의 거침없는 대사는 웃음으로나, 페이소스로나 청춘 멜로의 낯 간지러운 대사들이 해낼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한다. 이 영화에 '노처녀의 사랑찾기'이상의 울림이 담겨 있음을 보여 주는 요소다.

시트콤보다는 비중이 줄었으되 이 가족 가운데 살림을 담당하는 중년 남자 우현이 은행 통장 때문에 가족들 몰래 겪는 에피소드 역시 웃음 뒤에 페이소스를 안겨주는 힘이 된다. '내숭녀'인 동시에 '하녀'기질인 미자를 통해 관객이 맛보는 연민도 있다. 시트콤과 달리 영화에서 둘의 연애는 미자가 지 PD에게 일방적인 감정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자의 애절함과 난감함이 더 극적으로 표현되는 설정이다.

◆충무로 새 흥행코드 될까=구체적인 사건은 좀 달라졌지만 영화 '올미다'는 시트콤 '올미다'의 인물 성격과 출연 배우를 고스란히 옮겨왔다(할머니 중 둘째 역만 한영숙씨의 별세로 서승현씨가 맡았다). 김희갑.황정순 주연의 '팔도강산'(1967년) 같은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충무로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험이다. 제작사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는 "같은 출연진이 등장해야 시트콤의 팬들에게서 힘을 얻을 것이라고 봤다"고 설명한다. 냉정하게 말해 이 영화의 누구도 극장가에서 티켓파워가 검증된 스타가 아니라는 얘기다.

충무로의 통념을 거스른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시트콤'올미다'를 만든 김석윤 PD가 그대로 극장판'올미다'의 메가폰을 잡았다. 김 PD는 드라마가 아니라 오락프로 출신으로 현재 '개그콘서트'를 맡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선택은 1년여에 걸쳐 방송된 방대한 원작 가운데 장점을 뽑아내 영화로 변용하는 데 적절했던 듯하다. 장면 연결에서는 드라마의 인과관계가 정교하지 않은 약점도 보이지만 이는 영화 전체를 에피소드 위주로 연결한 코미디로 만들면서 취사선택한 결과로 보인다.

올 충무로의 흥행 이변이라면 4월에 개봉한 '달콤, 살벌한 연인'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올미다'는 이와 달리 국내외 대작들의 격돌시장인 연말성수기를 개봉 시기로 택했다. 만듦새뿐 아니라 이 영화의 흥행 성적 역시 충무로를 놀라게 할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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