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등급제는 비합리의 전형 본고사가 좋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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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 석학'으로 선정된 임지순(55.사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정부의 입시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16일 서울대 안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년에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표준 점수를 공개하지 않고 등급만을 전형에 활용토록 한 정부의 조치는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 잘 뽑을 수 있다고 하는데, 학생에 대해 더 적은 정보를 주고서 더 잘 뽑을 수 있다는 게 어디서 나온 발상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학 신입생 선발의 문제점을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임 교수는 또 "학생들이 수능에 대비해 문제 푸는 연습을 반복하고 실수 안 하는 요령만 터득하고 있다"며 "이래선 창의력이 길러지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미국의 창의적인 과학자들을 보면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그런 유형의 천재가 과연 길러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좌절감도 느낀다고도 말했다.

학생 선발 과정에서 수능을 보충하는 수단으로 실시하는 면접고사의 한계점도 짚었다. 구술은 순발력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한데 과학에서 순발력은 중요한 자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임 교수는 "말은 잘 못해도 과학을 좋아하는 창의력 있는 학생들을 뽑으려고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며 "본고사를 보면 제일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임 교수는 최근 학생들이 이공계를 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부가 많은 시책을 내놨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과학을 전공으로 택하지 않는 분위기는 여전하다"며 "학생과 부모 모두 돈을 편하게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하려 하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편 임 교수는 "교수는 먼저 학생을 잘 가르쳐야 하지만 지성인으로서 사회를 비판할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며 "비판 대상에는 내가 속한 교수 집단도 포함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권혁주 기자

◆ 임지순 교수는=극미세한 세계를 다루는 '나노 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한국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2일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선정한 '10인의 국가 석학'에 뽑혔다. 최근엔 미래 에너지인 수소 연료 실용화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경기고를 수석 입학.졸업했다. 현재 수능에 해당하는 전국 대학입학 예비고사(1970학년도)에서 전국 수석을 한 다음 서울대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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