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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황혜성씨 댁 궁중음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조선왕조 궁중음식부문 기능보유자인 무형문화재 제38호 황혜성씨(71·궁중음식 연구원 이사장)의 음식솜씨가 세 딸과 며느리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무형문화재가 될 수 있는 부문별 고유기능은 전수자→이수자→후보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무형문화재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10년 이상 전수를 해야 이수자가 되는 등 몹시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한다.
황씨 슬하의 1남3녀 중 맏딸 한복려씨(44·궁중음식연구원장)는 이미 힘든 고비를 다 넘기고 후보의 자리에 올라있고, 둘째 딸 복선씨(42·한복선 요리학원장)는 이수자로서 강사 자격을 갖췄으며, 셋째 딸 복진씨(39·춘천전문대 전통조리과 교수)와 며느리 김현미씨(32)는 전수장학생으로, 모두 황씨의 「외길인생」을 뒤쫓고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황씨의 궁중음식기능은 순정효 황후 윤씨(순종비)의 수라상을 차리던 한상궁(한희순씨)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 일본 경도여전을 졸업하고 대전고보에서 교편을 잡은지 3년만에 숙명여전조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됐을 때, 당시 숙명여전교장이던 일본인 조선역사학자 소전생오씨가 『조선에 관한 것을 연구해 보라』며 낙선재 소주방과의 길을 터준 것이 황씨가 궁중음식을 만나게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오늘의 황씨가 있기까지는 일찍이 충청도 천안에서「만석꾼 집안의 안방마님」으로 불렸던 친정어머니 진흥씨(작고)의 내림솜씨도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지주였던 아버지 황의수씨의 둘째 부인이었던 진씨는 시골출신이었으나 음식재료를 잘 사오고 요리도 잘할 뿐 아니라 계획도 잘 세워 대 소 가의 잔치 때마다 불려 다녔다.
어릴 때부터 궁중음식에 몰두해있는 황혜성씨를 보며 자란 그의 세 딸들은 그러나 정작 대학에서는 원예학(큰딸)·영양학(둘째딸)·가정관리학(셋째 딸)을 전공, 다른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10년 이상을 전수해야만 하는 무형문화재 기능을 결혼 등의 문제로 대부분 제자들이 「도중하차」하게 되자 딸들이 시댁의 양해를 구해 어머니의 외길에 동참하게 됐다.
며느리 김씨 역시 성악을 전공한 음악도였지만 결혼하면서 궁중음식을 배우기를 자청, 지금까지 7년째 공부를 계속해오고 있다.
『다 같은 자식이지만 저마다 특징이 있어요. 큰애는 진중하고 꼼꼼한 편인데 비해 둘째는 활동적이고 임기응변이 뛰어나요. 셋째는 딸들 중에 모든 일을 가장 빨리 처리하고 자기주장도 확실합니다. 며느리는 성격이 찬찬한데, 워낙 시누이들과 나이 차가 많아 어려워하기 때문에 제 실력 발휘를 다 못하지요.』 황씨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활동시간의 대부분을 궁중음식연구원과 요리학원이 함께 들어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706 우진빌딩에서 딸·며느리와 함께 보내고 있다.
최근 황씨와 한복려·복진 등 세 모녀는 『한국의 전통음식』이라는 대학용 전통음식교재를 함께 저술해 펴냈다.
『음식은 똑바로 가르쳐주기만 하면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손에 익게 됩니다.』
황씨는 앞으로 국립극장에 중국음식전문점인 지화자식당이 생겨나 딸·며느리들과 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다며 웃었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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