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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남편생활백서] 성전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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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양말 어디 있어요?" 첫째 휘강이가 자기 양말을 찾는다. 고2와 중3, 두 아들을 둔 맞벌이 부부의 아침은 비상 걸린 군 내무반처럼 분주하다. 어쩌면 나는 그 분주한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일찍 출근하는지도 모르겠다.

"네 양말을 왜 나한테서 찾니?" 늦잠을 잔 대가치고는 혹독하다. 아이들의 요구가 모두 내게로 몰려온다. 돌아서니 이번에는 둘째 유겸이다.

"오늘 문제집 사가야 하는데요." "엄마한테 이야기해."

"그냥 아빠가 돈 주세요." "아빠 늦는다. 늦어."

가방을 들고 서둘러 나서는 내 걸음을 둘째의 목소리가 붙든다.

"아빠, 오늘 친구집에서 자고 오면 안 돼요?" "내 집 두고 친구집은 왜?"

"친구 부모님이 해외여행을 가서 친구만 있단 말이에요."

"그럼 더 안 되지. 아무튼 아빠 출근 늦으니 엄마랑 이야기해."

"그냥 아빠가 엄마께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나는 집을 나와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 시계를 본다. 지각은 겨우 면하겠지만 늦은 출근이다. 아침잠이 많아져 걱정이다. 그러나 진짜 걱정은 따로 있다. 아이들이 점점 나를 엄마로 여기는 것 같다. 왜 내게 자기들 양말을 찾고, 문제집을 사 달라고 하는 걸까? 왜 곤란한 부탁은 다 나한테 하는 걸까? 나는 엄마가 아니라 자기들 아빠인데 말이다.

물론 나는 험악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여성스럽다.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생한 사례가 바로 나다. 나는 남자답지 못하다. 권투나 축구 같은 남성적인 스포츠보다 멜로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 어젯밤에도 TV 드라마를 보다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다.

"TV 드라마만 보고 너희 아빠 왜 저러신다니?"

"아빤 감성적이라서 그래요."

"감성적이 아니라 감상적인 거지. 드라마 보면서 찔찔 눈물이나 흘리고. 그것도 저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내용을 보면서 말이야."

아무래도 중년이 되면 증가한다는 여성호르몬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점점 눈물이 많아진다. 마음은 셀로판처럼 얇아져 대수롭지 않은 말에도 소리를 내며 구겨진다.

"TV 좀 봅시다." 나는 TV의 볼륨을 높인다.

고백하자면 나는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사랑스럽고, 빨강이나 분홍에 마음을 뺏긴다. 근사한 자동차보다 아기자기한 그릇에 더 눈길이 간다. 꽃이나 나무 같은 식물에 마음이 끌리고, 강한 것보다 약한 것, 딱딱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에 손이 간다. 강한 향기보다 은은한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고 우렁찬 고함보다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안에는 여자가 산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남성적으로 변해가는 아내에게 내가 끌리는지, 또 아내로부터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도 몸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느낀다. 몸매가 점점 둥글어지고 피부도 말랑말랑 부드러워진다. 당혹스럽지만 심지어 가슴이 봉긋 나온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놀란 눈을 하고 나를 그렇게 부른 아이들을 보자 아이들이 더 놀란다. "엄마, 왜 그래요?"

김상득 듀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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