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화전의 문턱에 선 걸프전(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걸프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서 미소간에 냉전시대의 경쟁관계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이 불씨는 군사대결에서는 패배했으되 그 잿더미속에서 지역정치의 맹주 위치를 되살려 보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의 야심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측이 여러 가지 복선이 깔린 이라크군의 「무조건 쿠웨이트 철수안」을 아지즈 이라크외무와 합의한데 대해 미국이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이라크쪽에 최후통첩을 낸 상황 전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미국측에서 볼 때 소련이 이라크와 합의한 종전안은 그 자체로서도 불만스러운 것이지만 그 주체가 소련이라는데에 대해 더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종전 8개안은 긍정적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볼때 그런 식으로 이 전쟁이 끝날 경우 이라크는 계속 중동의 위협적 정치·군사력을 가진 세력으로 남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미국은 분석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결과는 결국 전쟁과 국제적 명분에서 완패한 이라크를 중동내 반미혁명세력으로 발돋움하게 허용하는 것이되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지금까지 미국의 거의 독점적 영향권이었던 중동에 소련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친아랍세력으로서의 위치를 공짜로 얻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소련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 「감사한다」고 공개적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50만군대까지 파견하고 있는 자신의 등에 칼을 꽂으려는 음모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3자간의 동상이몽이 종전협상에 심각한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황은 미군을 주측으로 한 다국적군이 별 장애없이 이라크군을 쿠웨이트로부터 몰아낼 수 있는 상태다.
그러나 결전을 강행할 시간의 여유는 얼마 남지 않았다. 회교 금식기간인 라마단과 사막의 여름이 곧바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철군시한이 명시되지 않은 소련­이라크간의 외교적 합의는 시간을 끌어 다국적군의 지상전 개시를 우선 막아보자는 음모라고 보는 미국측 시각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단계에서 전쟁이 끝나도록 외교노력이 군사적 압력과 함께 진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상전으로의 확대가 가져올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이미 쿠웨이트내의 유정들을 폭파시키는등 무모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군사·정치적 완전 패배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때 이라크가 지금까지 자제해온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라크와 다국적군이 대량 사상하는 단계에 접어들면 전쟁은 아랍·회교권대 서방세계간의 대결양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나갈 위험도 같이 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소갈등의 불씨도 더 번지게 될 것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무조건 완전철수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유엔결의의 정신에 따라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 노력에는 소련이 초기에 보였던 침략응징정신을 살려 이라크를 설득시키고 미국도 이라크인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